
일본어에서도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置き石(오키이시, 놓는 돌)’ 또는 ‘手合割(테아이와리, 대국 조건)’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置数(ちすう, 치스우)’라는 용례도 문헌에서 확인된다. 다만 현대 일본 바둑계에서는 치수보다 호선(互先), 접바둑(置き碁), 치석(置き石) 등의 표현이 더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치수(置數)라는 용어가 확인되는 것은 해방 이후부터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동아일보 1956년 3월 3일 자 ‘국수승발전 제8국 총보(囯手勝拔戰 第八局總譜)’ 기사에는 ‘이것도 오히려 과중할 정도며 사분지일 정도가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4단 차의 현행 치수(置數)는 이선이(二先二)이며…’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치수(置數)는 단순히 실력 차이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단급 차이에 따라 미리 놓는 돌의 수와 대국 조건을 의미하는 전문용어로 사용됐다. 즉 당시에도 치수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접바둑의 기준'을 가리키는 용어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치수가 맞다', '치수가 한 점 차이'와 같은 표현이 널리 쓰이면서, 치수는 접는 돌의 개수뿐 아니라 두 기사 사이의 실력 차이 자체를 의미하는 말로 의미가 확대됐다.
현대 스포츠에서는 핸디캡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골프에서는 타수를 조정하고, 경마에서는 부담 중량을 달리한다. 그러나 바둑의 치수는 조금 다르다. 경기 전에 이미 판 위에 돌을 놓는 행위 자체가 실력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차이를 메우려는 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공정함'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장치인 셈이다. (본 코너 73회 ‘‘핸디캡(Handicap)’의 ‘캡’은 무슨 뜻일까‘ 참조)
치수는 바둑 교육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나치게 강한 상대와 호선으로 두면 배우는 즐거움보다 좌절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적절한 치수를 두면 초보자도 공격과 수비를 경험하며 끝까지 승부를 이어갈 수 있다. 성장의 사다리를 만들어 주는 교육적 장치인 것이다.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에도 치수라는 말은 여전히 살아 있다. AI와 사람의 대국에서도 접바둑이 연구되고, 실력 차이를 조정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시대는 변했지만 '공정한 경쟁을 위해 조건을 조정한다'는 치수의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본 코너 1850회 ‘바둑 AI를 왜 '카타고'라고 말할까’, 1851회 ‘바둑 AI '알파고'는 무엇을 남겼나’ 참조)
결국 치수는 바둑만의 독특한 문화 언어다. 숫자를 세는 말이면서도 배려를 뜻하고, 실력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더 좋은 승부를 만들려는 지혜를 담고 있다. 그래서 바둑에서는 지금도 단순히 핸디캡이 아니라 치수라는 말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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