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골프

[호남평야 골프종주기]<상>무모한 도전의 시작

2013-05-10 17:37:52

[호남평야 골프종주기]<상>무모한 도전의 시작
[마니아리포트 김세영]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꿈을 단지 머릿속 상상으로만 머물게 하면 몽상이고, 꿈을 실현하면 그건 현실이 된다. 3년 전 귀농을 하면서 내게도 작은 꿈이 하나 생겼다. 언젠가 드넓은 호남평야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며 골프를 즐기겠다는, 어쩌면 ‘미친 놈’ 소리 들을 꿈을 꾼 것이다. 아마 그 옛날 스코틀랜드의 목동들이 대서양의 찬바람이 몰아치는 해안가 풀밭에서 작대기로 돌멩이를 때릴 때에도 누군가는 “미친놈들, 양떼는 돌보지 않고, 허튼 짓한다”고 비난했을 것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가을걷이가 끝난 겨울 논에서 골프를 해봤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의 샷만 했지만 나의 꿈을 현실로 옮길 시험무대는 성공적이었다. 그 뒤 1년 동안 짬짬이 호남평야를 횡단할 방법과 시기 등에 대해 고민했다.

광활한 호남평야에서 골프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데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도 있다. 광야(廣野)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거친 바람과 이름 모를 철새 뿐이다. 그 안에서 나는 작고, 외로운 존재다. 하지만 그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으면서 마음 가는 데로 샷을 날릴 수 있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의 태양을 향해 골프공을 날린다는 상상만 하더라도 온 몸은 짜릿해진다.
자유에 대한 본능적 갈망은 어릴 적 봤던 만화영화 ‘보물섬’이 여전히 나의 뇌리 한켠에 자리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실버 선장과 어린 소년 짐이 보물을 찾아 미지의 세계로 떠나 모험을 즐겼다면 현실의 나는 자유를 찾아 시골로 내려왔고, 거기서 또 다시 작은 자유를 찾아 이번 골프여행을 떠난 것이다. 바다 대신 거친 평야 한가운데로 항해를 한 셈이다. 불과 2박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난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했다. 또한 마냥 외롭지도 않았다. 함께 농사를 짓는 친구인 ‘꿈을 짓는 농부’가 이번 이벤트에 기꺼이 동참해 주었기 때문이다.

◇무모한 도전의 시작...그러나 그건 자유였다
지난 19일 오전 8시 전북 군산시 옥구읍. 아침부터 잿빛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논에는 매서운 바람만이 몰아치고, 드넓은 갈대밭은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연신 울부짖었다. 호남평야 종단 논두렁골프의 첫날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하늘은 2박3일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몸과 마음은 얼어붙었다. ‘과연 이번 일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쨌거나 시작했으니 마쳐야 했다. 골프는 자연과의 싸움이 아닌가. 그 옛날 스코틀랜드의 목동들도 차가운 북대서양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해안가 모래 언덕에서 샷을 날리지 않았던가. 이런 각오로 마음을 다졌다.

13022602.jpg
따뜻한 커피 한 잔 생각이 간절했지만 시골의 작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그런 호사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차가운 캔 커피를 마시며 몸 안에서 갈구하는 카페인 욕구를 채웠다. 드디어 논으로 이동했다. 잠시 몸을 풀며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골프 근육’을 깨웠다. 벼의 그루터기 위에 볼을 올려 놓고 힘찬 티샷을 날렸다. 타악~! 첫 번째 티샷은 오른쪽 갈대밭으로 향했다. 다시 볼을 올린 후 침착하게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약간 훅이 났지만 다행히 논바닥에 안착했다. 대장정의 서막은 그렇게 올랐다.
▲자연의 시샘=가방을 메고 티샷이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했다. 다루기 편한 7번 아이언을 선택했다. 볼은 일직선으로 날아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볼을 찾을 수가 없었다. 보리 싹이 올라온 두 번째 논부터는 볼이 절반 이상 잠기는 바람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5~10분 정도 걸렸다.

전략의 수정이 필요했다. 볼 찾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짧게 끊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9번 아이언으로 샷을 날렸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골프장에서는 특정 나무나 바위 등을 기준 삼아 볼이 떨어진 지점을 정확히 알 수 있지만 드넓은 들판에는 기준점을 삼을 만한 게 아무 것도 없고, 착시 현상도 심했다. 땅이 언 탓에 불규칙 바운드도 심했다.

13022603.jpg
더욱 힘들게 한 건 바람이었다. 강한 바람에 몸은 금세 움츠러들었다. 기온은 영상 3도였지만 체감기온은 영하 10도에 달했다. 눈과 코만 나오는 후디를 착용했지만 그래도 추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농로에 털썩 주저앉으니 고개가 절로 떨어지고 한숨이 나왔다.

▲우려했던 논주인의 출현=다시 마음을 다잡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농로를 빠르게 달려오는 흰색 1t 트럭 한 대가 보였다. 한 눈에 우리 일행을 향해 오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처음부터 우려했던 일이었다. 혹시 논 주인들이 자기네 논으로 지나가는 걸 반대하면 어쩌나 했다. 그렇다고 그 많은 논의 주인들에게 허락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반대를 하면 그때그때 설득을 하는 각개전투 방식을 벌여야 했다.

논주인은 트럭이 멈추기도 전에 창문을 내리더니 “지금 남의 논에서 뭐하는 거요?”라고 따져 물었다. “잠깐 여기 논 좀 지나가려고요. 보리에는 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이렇게 매트 위에 볼을 올려놓고 치고 있어요.” 하지만 논주인은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남의 논에서 뭐하냐고요?” 안 되겠다 싶어 이번 이벤트에 대한 설명을 차근차근했다. 그리고 나 역시 정읍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제야 논주인은 “아, 그래요? 지금 보리 밟아주면 좋지요.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뜨끈한 새참 vs 꽁꽁 언 점심=앞서 트럭을 몰고 갔던 친구가 다음 샷 지점에서 새참으로 컵라면을 준비했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자 그나마 잠시 언 몸이 녹았다. 다시 2시간 쯤 지난 후 점심을 먹을 곳이 필요했다. 다행히 어느 마을의 모정을 봐둔 게 있었다. 사방을 유리창으로 막은 그곳에 가니 한쪽 유리창은 떨어져 나가 있었다. 그곳으로 찬바람이 쉴새없이 들어왔지만 그나마 허허벌판보다는 나았다.

우리는 비빔밥을 준비했다. 하지만 전날 싸둔 밥은 꽁꽁 얼어 있었다. 냄비에 물을 붓고 도시락과 햇반을 데웠지만 바람 탓에 한참이 지났는데도 밥에서 김이 올라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반은 데워지고, 반은 여전히 얼어붙은 밥을 비볐다. 먹는다는 말보다는 입에 쑤셔 넣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하지만 그렇게 라도 해야 오후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가피한 계획 수정=야외에서 점심을 마친 후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후 2시가 다 되도록 지나 온 거리는 5km 정도에 불과했다. 볼을 찾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바닥이 눈에 덮여 있던 4주 전 코스를 답사했을 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더구나 오후 들어서는 땅이 녹기 시작해 볼이 논바닥에 박히기 일쑤였다. 발도 빠져 걷기도 힘들었다. 이런 속도라면 도저히 2박3일 동안 호남평야를 종단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중요 포인트를 정해 놓은 후 그곳을 주파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상 총 거리는 50km였으나 수정을 해 절반인 25km로 줄였다. 군산의 어은리-월연리 구간(5km)을 지난 후 신기촌-오산촌(1.7km) 구간을 통과했다. 그런 후 우리 일행은 군산과 김제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만경강으로 향했다. 호남평야를 관통하는 만경강은 평야 구석구석에 물을 공급해 주는 젖줄이다. 군산 쪽 강변에서 김제시 강변의 갈대숲을 향해 티샷을 날렸다. 군산에서의 마지막 샷이었다.

김제에서는 만경읍 소토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다음 일정을 이어갔다. 그곳에서 다음 마을인 화포까지 가는 코스도 만만치 않았다. 대개 저녁 무렵이 되면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지만 이날 바람은 여전히 그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샷을 날린 후 걸어가는 중간 하늘을 바라 보니 철새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북쪽으로 날아가던 철새들은 바람에 전진을 하지 못하고 방향을 꺾고 있었다. 결국 우리 일행도 오후 5시쯤 호남평야 논두렁골프의 첫날 일정을 마쳤다.

▲골프카트로 변신한 트럭=골프장에는 클럽하우스와 그늘집이 있어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지만 논두렁골프에서는 이런 걸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그래서 트럭에 텐트와 휴대용 취사도구, 라면, 초콜릿, 음료수 등을 싣고 다니며 야외에서 휴식을 취했다.

골프카트도 포장이 제대로 안 된 농로를 다닐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거운 골프백을 메고 2박3일 동안 걸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백에는 드라이버와 5번, 7번, 9번, 52도 웨지, 그리고 퍼터만 넣었다. 골프장과 달리 평야에서는 매번 클럽을 교체할 필요가 없으므로 한두 개의 클럽만 손에 들고 다녀도 된다. 실제로 샷을 할 클럽과 매트를 뺀 나머지 장비도 트럭 짐칸에 실었다.

농사용 트럭이 클럽하우스와 그늘집, 그리고 카트의 역할을 한 셈이다. 함께 동행해 준 친구가 트럭의 운전을 맡았다. 트럭 운전사는 캐디 역할도 한다. 드넓은 벌판에서 미리 앞으로 나가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대개 남쪽으로 향하면 큰 낭패는 없지만 중간 중간 마을 사이를 빠져나갈 때는 방향을 제시해 줘야 했다.

리스트바로가기

많이 본 뉴스

골프

야구

축구

스포츠종합

엔터테인먼트

문화라이프

마니아TV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