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에서 양궁 훈련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1004052452051335e8e9410871751248331.jpg&nmt=19)
이학래 한양대 명예교수가 펴낸 ‘한국체육백년사’에 따르면 북한에서 국방체육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4년이었으며, 북한이 그 역할과 임무를 맨 처음 제시한 것은 1959년 2월27일 내각결정 제15호 ‘체육사업을 발전시키며 스포츠기술 기준을 제고할 데 대하여’에서 였다. 이후 1962년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하면서 국방체육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기 시작했다.
국방체육은 북한의 표현대로 “인민들을 조국보위에 튼튼히 준비시키기 위하여 진행하는 대중적인 체육”으로 “체육을 대중화하는 데 대한 당의 방침을 관철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북한은 국방체육 강화책의 일환으로 근로자와 학생들에게 사격, 행군, 활쏘기, 활동기, 모형항공, 무선통신 등을 권장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중앙에 국방체육선수단을, 각 시도에 국방체육구락부와 해양구락부를 설치해 국방체육을 강화했다.
북한은 대내 체육행사 때에 일반체육과 병행해 국방체육종목을 의무적으로 포함시켰다. 또 별도로 각종 국방체육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1967년 전국낙하산 및 무선통신경기대회가 창설됐으며, 1000m낙하를 기본종목으로 채택했다. 국방체육대회에는 부상병 나르기, 위생학, 모형활공, 인공호흡 등을 대상 종목으로 한 전국여성국방체육대회와 권투, 레슬링, 격술, 구기, 마라톤 등 20여 종목을 대상으로 한 일당백상체육경기대회도 열렸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고지점령, 독도법, 수기신호, 방향판정 등 20개 종목으로 이루어진 전국청소년 등산 및 강행군경기대회도 개최된다.
우리나라 언론은 북한 국방체육에 대해 1970년대부터 본격 보도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동아일보 1972년 11월27일자 ‘오늘의 北韓体育(북한체육) (1) 組織(조직)기구’ 기사는 북한체육 현황을 알리며 ‘국방체육’이라는 단어를 썼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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