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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87] 당구에서 ‘세트 포인트’를 왜 ‘돗대’라고 말할까

2026-05-18 06:40:43

‘3쿠션 전설’ 다니엘 산체스 [PBA 제공]
‘3쿠션 전설’ 다니엘 산체스 [PBA 제공]
“이제 돗대까지 갔네.” 당구장에서 이 말이 나오면 경기가 끝에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한 점 넣으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을 뜻한다. 예를 들어 25점 경기에서 A가 24점, B가 18점이면 A가 돗대 상태인 것이다.

돗대에 대한 영어식 표현은 ‘세트 포인트(set point)’이다. 세트 포인트(set point)는 세트를 끝내는 마지막 한 점을 뜻한다. 세트 포인트를 따내면 그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 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set point’는 set’와 ‘point’의 합성어이다. 원래 ‘set’라는 말은 종교 공동체를 뜻하는 중세 라틴어 ‘Secta’에서 유래됐다. 고대 프랑스어로 순서를 뜻하는 ‘Secte’를 거쳐 영어로 유입됐다. 테니스 게임 등에서 한데 모으는 의미로 1570년대부터 세트라는 말을 썼다. (본 코너 977회 ‘왜 ‘세트 포인트(set point)’라고 말할까‘ 참조)

한국 당구장에서 본격적으로 세트포인트라는 말을 많이 쓰기 시작한 건 대체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이후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아직도 세트포인트 대신 돗대라는 말을 당구 현장에서 더 많이 쓰고 있다.
돗대의 정확한 어원은 사실상 정설이 없다. 국립국어원이나 당구 공식 용어집에도 명확한 유래가 정리돼 있지 않고, 당구계 구술 문화 속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에 가깝다. 다만 현장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설은 크게 세 가지이다.

먼저 배의 ‘돛대’에서 왔다는 설이다. 돛대는 배의 중심 기둥이다. 배가 항해를 완성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마지막 중심축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그래서 당구에서도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한 점, 즉 세트 포인트 상황을 비유적으로 돗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옛 당구장 문화에서는 직설적인 표현보다 은유와 속어를 즐겨 썼기 때문에 이런 식의 표현 변화가 자연스럽게 생겼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다만 문제는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럴듯한 민간 어원에 가깝다.

다음은 일본 당구 은어에서 변형됐다는 설이다. 한국 당구 용어 상당수는 일본식 표현의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다마(玉)’, ‘히네리(ひねり)’, ‘맛세이(massé의 일본식 발음 경유)’ 등이다. (본 코너 1779회 ‘왜 아직도 '당구공'을 ‘다마’라고 부를까‘, 1786회 ’당구에서 왜 '마세' ‘맛세이’라고 말할까‘, 1787회 ’당구에서 왜 ‘회전’을 ‘시네루’라고 말할까‘ 참조)

이런 흐름 속에서 ‘돗대’ 역시 일본 당구장 은어나 속어가 변형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일부에서는 일본어 “돗텐(どってん)” 또는 비슷한 음의 속어를 언급하지만, 실제 일본 당구 용어 자료에서 명확하게 대응되는 표현은 잘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설은 가능성 수준에 머무는 편이다.

마지막은 ‘끝대’가 ‘돗대’ 음운으로 변화했다는 설이다. 당구계 원로들 사이에서는 끝대가 변형된 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마지막 대목, 끝나는 타이밍, 끝점같은 의미가 구어 속에서 빠르게 발음되며 ‘끋대 → 돋대 → 돗대’처럼 변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것도 언어학적 증거는 약하다.
현재로서는 돗대는 정확한 어원이 문헌으로 확인되지 않는 당구장 은어이며,
배의 돛대 이미지와 일본식 당구 문화, 현장 속어가 섞여 굳어진 표현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정도로 정리하는 게 가장 무리가 없다.

사실 돗대 같은 표현은 표준 스포츠 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야말로 당구 문화를 살아 있게 만든다. 오래된 당구장에는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과 사람 냄새가 남아 있다. 누군가는 ‘한큐’, 누군가는 ‘다마’, 또 누군가는 돗대라고 말하며 같은 게임을 자기만의 언어로 기억한다. 결국 돗대는 단순한 세트 포인트가 아니다. 승부의 마지막 긴장, 오래된 당구장의 공기, 그리고 세대를 거쳐 내려온 생활 언어의 흔적이다. 마지막 한 점 앞에서 숨을 고르는 순간, 우리는 단지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당구 문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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