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호 한국배구연맹 특보(가운데)가 프로배구 시상식에서 수상자들과 포즈를 취한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6120801250534805e8e9410871751248331.jpg&nmt=19)
이날 모인 20여명의 원로 배구인들의 면면은 곧 한국 배구사의 축소판이었다.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지도자들, 체육 행정가들, 배구 전문 언론인들까지. 단순한 송별회라기보다 한국 배구의 한 시대를 정리하는 역사적 모임에 가까웠다.
조 특보의 이력은 한국 배구의 발전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한양대 배구단 창단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대학 현장에서 수많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길러냈다. 강만수, 김호철, 하종화, 김세진, 이경수 등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스타들의 성장 배경에는 그의 헌신이 있었다. 선수 육성에 그치지 않고 심판으로도 활동해 한국 최초의 국제배구연맹(FIVB) 국제심판이 되었으며,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까지 네 차례 연속 올림픽 무대를 누볐다.
이날 고별연에서 나온 발언들은 개인에 대한 덕담을 넘어선 평가였다. 최종옥 전 남자대표팀 감독은 “조 특보의 역사는 곧 한국 배구의 역사”라며 “그동안 한국 배구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신 분”이라며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했다. 진준택 전 대표팀 감독은 “그동안 나 사진은 조 특보를 향해 쓴 소리를 많이 해왔던 게 사실이다”며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한 것은 한국 배구가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조 특보는 아무 사심없이 정말 열심히 해주었다”고 말했다. 신무철 한국배구연맹 사무총장은 “조 특보는 그동안 경기 안팎에서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큰 도움을 많이 주셨다”며 “배구 문제가 정치권으로 비화될 상황에서 정치인들을 잘 설득시키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국 배구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의 주요 장면마다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말들은 결코 빈말만은 아니다. 오늘날 스포츠계는 성과와 흥행, 스타 마케팅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종목의 지속적인 발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랜 시간 헌신한 사람들에 의해 가능해진다. 조 특보의 퇴장은 단순히 한 행정가의 은퇴가 아니라, 한국 배구를 일구어 온 원로 세대가 무대 뒤로 물러나는 상징적 장면으로 읽힌다.
한 시대는 끝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코트 위에 남아 있다. 그가 길러낸 선수들, 그가 세운 제도들, 그리고 그가 지켜온 배구 정신은 앞으로도 한국 배구의 자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 배구가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지금, 조영호라는 이름은 과거의 영광을 회고하는 대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책임과 계승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것으로 남을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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