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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80] 장기에서 왜 ‘병(兵)’이라 부를까

2026-08-20 07:48:18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80] 장기에서 왜 ‘병(兵)’이라 부를까
장기판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말이 있다. 바로 ‘병(兵)’이다. 한나라 진영에 다섯 개씩 놓이는 이 작은 말은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가며 전진한다. 한자 ‘兵’이라는 단어의 출발점에는 무기와 무장을 한 군사라는 개념이 있다. 고대 중국에서 兵은 오늘날의 ‘병사’ 하나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무기와 군사, 나아가 전쟁과 군사력을 아우르는 말로 쓰였다.

실제로 한자어에서도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병기(兵器)는 군대가 사용하는 무기이고, 병법(兵法)은 전쟁을 수행하는 방법이다. 병력(兵力)은 군사력이며, 출병(出兵)은 군대를 내보내는 일이다. 이 말들에서 兵은 단순히 ‘한 명의 병사’라기보다 ‘군사와 전쟁’이라는 넓은 의미를 품고 있다.

兵의 자형(字形)은 고대 글자에서 사람이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과 관련된 것으로 설명된다. 다만 兵의 정확한 갑골문·금문 형태와 자원(字源)은 학설과 자전의 해석에 차이가 있어, “사람이 도끼를 들고 있는 모양”처럼 단정적으로 설명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고대 사회에서 무기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무기를 소유하고 전투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군사적 역할을 맡는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무장한 사람’, ‘군사’, ‘병사’를 나타내는 말과 ‘무기’를 나타내는 말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의미가 겹쳤다.
兵은 장기판에 들어오면서 의미가 더욱 구체화된다. 장기는 기본적으로 전쟁터를 축소해 놓은 게임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은 장(將)이고, 그 주변에는 사(士)가 있다. 차(車)는 전차, 마(馬)는 기병, 포(包)는 포병적 성격을 나타낸다. 그리고 가장 앞에서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 병(兵)이다. (본 코너 본 코너 1875회 ‘장기에서 왜 ‘차(車)’라고 부를까‘, 1876회 ’장기에서 왜 ‘마(馬)’라고 부를까‘, 1877회 ’장기에서 왜 ‘상(象)’이라고 말할까‘, 1878회 ’장기에서 왜 ‘사(士)’라고 부를까‘ 참조)

그러니 장기의 병은 말 그대로 전쟁터에 나가는 군사라는 의미를 그대로 이어받은 셈이다.

여기에는 또 하나 재미있는 언어의 대비가 있다. 장기판에서 초나라 쪽은 ‘병(兵)’이라 부르지만, 한나라 쪽은 ‘졸(卒)’이라 부른다. (본 코너 1879회 ‘장기에서 왜 ‘졸(卒)’이라 부를까‘ 참조)

졸(卒) 역시 옛날부터 군사를 가리키던 말이다. ‘병졸(兵卒)’이라고 하면 ‘병사’를 뜻하는데, 장기에서는 이 두 단어를 각각 다른 진영의 병사 이름으로 사용한다. 결국 장기판의 병은 단순히 약한 기물을 뜻하는 이름이 아니다.

그 말의 뿌리에는 무기에서 무장한 군사로, 또 군대에서 전쟁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의미의 층위가 있다. 장기판에서 “병 하나 전진시킨다”고 말할 때, 사실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군사와 전쟁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작은 병이 장기판에서 맡은 역할이다. 병은 가장 강력한 기물이 아니다. 차처럼 멀리 움직이지도 못하고, 마처럼 뛰어다니지도 못한다. 그러나 병은 전진하면서 상대의 진영을 압박하고, 다른 기물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적진 가까이까지 나아가면 좌우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실제 전쟁에서의 병사와도 묘하게 닮아 있다. 장군이 전략을 세우고 지휘관이 명령을 내리더라도, 결국 전장을 움직이는 것은 땅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병사들이다. 장기의 병이라는 이름에는 그런 전쟁의 질서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장기를 둘 때 병이라는 말을 가볍게 지나칠 필요가 없다. “병을 한 칸 전진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실은 아주 오래된 전쟁의 언어를 다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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