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번 정성훈의 안타로 시작된 LG의 공격은 이후 박용택과 스나이더가 볼넷과 안타로 다시 출루하며 기회를 맞았다. 이진영의 투수 땅볼로 공격이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 무렵, 6번 타자로 출전한 이병규(등번호 7번)가 일을 냈다. 그가 김강률을 상대로 친 타구가 그대로 좌측 담장을 넘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것 같은 경기는 12-8까지 좁혀졌고, LG는 이후 8, 9회에 4점을 더 내며 경기 끝까지 두산을 괴롭혔다. 만약에 경기 도중 나온 몇 차례 주루 플레이/수비 미스와 9회 초 등장한 정찬헌의 실점이 없었다면 LG의 대역전승도 불가능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
LG 선전에 힘을 낸 두 명의 팬, ‘이제는 아련한 추억’
박기홍 옹(翁)은 당시 ‘LG 할아버지’로 큰 유명세를 탄 이였다. 지난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잠실야구장 응원석에서 빠짐없이 MBC 청룡과 LG 트윈스를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이 TV중계 카메라에 자주 잡혔던 것이 그 시초였다. 때로는 원정 경기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며 남다른 LG 사랑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당시 LG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김재박 KBO 경기감독관은 선수 시절에 LG 할아버지가 경기장에 나오지 않으면, 반드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LG 할아버지의 응원은 박 옹이 1992년 1월 30일, 향년 87세로 타계하면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지금도 LG의 올드 팬들 중에는 ‘붉은 점퍼와 검은색 모자를 쓰고 흰 장갑을 낀 채 호루라기를 불며’ 언제나 치어리더들과 함께 LG 트윈스를 열렬히 응원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이후에는 ‘달마 아저씨’로 유명세를 탔던 박제찬씨가 잠실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LG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내/외야, 심지어는 지정석까지 넘나들며 LG를 응원해왔는데,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본 LG팬들은 그에게 ‘달마 아저씨’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야구 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꾸준히 LG와 관련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며 변함없는 ‘LG 사랑’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상훈 현 고양 원더스 코치도 ‘그룹 WHAT’을 결성하여 오프시즌에는 밴드 활동을 펼쳤는데, 그러한 공연에도 ‘달마 아저씨’는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먼발치에서 이상훈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한 달마 아저씨를 향하여 이상훈은 자신의 애장품을 선물하며, 그곳까지 찾아 온 데에 대한 답례를 표했다.
모든 LG 선수들에 대한 무한 애정을 표현했던 ‘달마 아저씨’였지만, 정작 그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박용택이었다. 선수 사인회가 열릴 때마다 그 앞에 다가서지 못하고, 한없이 부끄러워했던 그를 박용택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박제천씨의 타계 소식이 알려진 이후 박용택은 즉각 빈소를 찾아 자신을 끝까지 응원해 준 데에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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