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사 모든 일이 의식보다 빠르게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올해 상반기 남자 골프는 너무 허망하게 끝난 듯하다. 정규 투어 첫 대회였던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부터 이번 대회까지 두 달 만에 막을 내렸으니 말이다.
상반기 성적표를 보면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다. 6개 대회에 출전해 절반인 세 차례 컷을 통과했다. 아무리 볼을 잘 쳐도 미련이 남게 마련이듯, 상반기 대회를 치른 지금의 심정은 조금 허망하면서 아쉽다. 그래서 두 달 쉬는 동안 이를 악 물고 연습에 매진할 계획이다.

플레이 스타일 따라 궁합 맞는 코스 따로 있어
난 스카이72와 군산 등 넒고 긴 코스 선호
시합을 치르다 보면 선수들과의 궁합이라는 게 있다. 어떤 선수는 드라이버에 강점이 있고, 어떤 선수는 아이언을 잘 친다. 또 어떤 선수는 그린 플레이가 뛰어나다. 이에 따라 코스와의 궁합이 결정된다.
나의 경우에는 일단 멀리 치는 스타일이다. 시원시원하게 지르는 게 좋다. 그래서 페어웨이가 넓고, OB(아웃오브바운스) 구역이 별로 없는 곳이 편하게 느껴진다. SK텔레콤오픈이 열렸던 인천의 스카이72나 군산CC오픈이 열린 군산 골프장이 여기에 속한다.

이번 군산CC오픈에서 우승한 이수민도 티샷의 방향성이 완벽한 편은 아니지만 코스와의 궁합 덕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본다. 어쨌거나 그가 아마와 프로 신분으로 같은 대회를 두 번 제패했다는 건 대단한 기록임에 틀림없다.
코스가 길고, 바람이 많이 편인 군산 골프장에서는 소위 ‘짤순이’ 골퍼들이 애를 먹는다. 1,2라운드 때 동반 플레이를 했던 K 골퍼가 그랬다. 이 형은 현재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비거리는 긴 편이 아니다. 시합에 앞서 이 형이 말하길, 자기는 이 코스에서 좋은 성적 내기는 힘들다고 했다. 실제로 이 형은 맞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스푼으로 두 번째 샷을 하고도 2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르는 스타일의 선수는 페어웨이가 좁고, 업다운이 심한 산악형 코스와는 상극이다. 심지어 답답하기까지 하다. 내 성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매경오픈이 열린 남서울과 개막전이 열렸던 몽베르, 넵스 헤리티지 대회가 열렸던 360도 등이 이런 골프장이다.
이런 코스에서는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플레이로 공략하는 선수에게 유리하다. 나는 매경오픈 당시 숲으로 볼을 보내 고생 꽤나 했다. 더구나 남서울 골프장은 금잔디여서 백스핀이 양잔디인 곳보다 잘 안 먹힌다. 그런데 그린은 빠르니 대부분의 선수들이 고전했던 것이다.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샷 이글’
답답함 한순간 ‘해소’…하반기 벌써 기대
이런저런 이유로 궁합이 맞았던 군산 골프장에서는 나를 더욱 기쁘게 해 준 특별한 샷이 나오기도 했다. 상반기 마지막 대회,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샷 이글’이 나온 거다. 샷 이글은 2부 투어 뛸 때는 몇 번 기록했지만 정규 투어에서는 처음 했다.
상황은 이랬다. 최종 4라운드를 10번홀부터 출발해 나에게는 9번이 마지막 홀이었다. 세 번째 샷을 할 때 홀까지 남은 거리는 110m였지만 앞바람이 있어 130m로 계산하고 피칭 웨지를 잡았다. 임팩트 순간 손맛이 좋았다. 볼은 핀 우측으로 1m 가량 지나쳐 떨어진 뒤 백스핀이 걸리면서 홀에 빨려 들어갔다.
실제 볼이 들어가는 건 아쉽게 보지 못했는데 그린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반대편 18번홀 그린에서 퍼팅을 하고 있던 김병준, 정지호 프로도 이 장면을 봤는지 라운드가 끝난 뒤 “나이스 이글”이라며 축하를 해줬다.
미국에서 뛰고 있는 최나연이나 김세영처럼 우승을 결정짓는 ‘샷 이글’이었다면 더욱 기뻤을 텐데 그래도 이 이글 한방에 그동안 쌓였던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가 됐다. 그 답답함이란 처음에 갈 나가다가 막판에 집중력을 잃고 무너지는 거다. 첫날에도 16번홀까지 4언더파를 기록하다 마지막 2개 홀에서 더블 보기와 보기를 범하며 순식간에 3타를 까먹고 말았다.
이렇듯 골프는 한순간 방심하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은 상반기였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하반기에는 좀 더 집중력을 발휘하는 플레이를 선보이려 한다. 그래서 요즘은 멘탈 관련 서적도 틈틈이 읽고 있다. 하반기에는 특히 한국오픈과 신한동해오픈 등 굵직한 대회가 남아 있어 더욱 더 기대가 된다.
정리=김세영 기자 k01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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