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국내 남자 골프계에도 ‘베테랑’의 귀환을 알리는 소식이 있었다. 매일유업 오픈에서 우승한 김대현(27)과 같은 날 일본에서 우승 소식을 전한 김경태(29)다. 둘 다 2007년부터 프로골프 무대에 뛰어 들었다. 내년이면 투어 10년 차를 맞는 베테랑이다.
프로 입문 동기인 그들은 공교롭게도 최근 몇 년 사이 ‘이름값’에 비해 그저 그런 성적을 내다 올해 재기에 성공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부활 샷을 날릴 수 있었던 비결도 일맥상통한다.
반면 김경태는 멀리는 아니지만 가장 정확하게 볼을 날리는 선수로 꼽혔다. 그의 드라이버 샷은 페어웨이 한 가운데를 가로질렀고, 아이언샷은 그린에 정확히 꽂혔다. 이를 바탕으로 2007년 국내 최초 데뷔전 2연승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그해 상금왕, 대상, 덕춘상(최저 타수상) 등 4개의 타이틀을 휩쓸었다.

남자 골퍼들이 으레 그렇듯 김대현과 김경태에게도 비거리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영화 베테랑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오’다. 김대현은 가오를 지키기 위해, 김경태는 가오를 얻기 위해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비거리가 필요했다. 물론 이를 가오라는 한 단어로 규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그들의 가슴 깊은 곳엔 그런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김대현은 2010년 상금왕에도 올랐다. 하지만 그는 평소 ‘장타왕’이라고 불리는 게 훨씬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대현에게 장타는 단순히 볼을 멀리 날리는 의미 이상이었다. 하나의 브랜드이자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였다.

부상으로 인해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2013년 미국 2부 투어 격인 웹닷컴 투어에 뛰어들었지만 실패를 맛보고 국내로 U턴 했다. 지난해 12개 대회에 출전해 5차례나 컷 통과에 실패했다. 상금 순위도 36위에 그쳤다. 올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매일유업 오픈 전까지 7개 대회에 출전해 4차례나 컷 탈락했다.
상반기를 마친 그의 심정은 참담했다. 주위에선 ‘이제 김대현은 갔다’고 수군거렸다. 그는 심리적 불안 증세까지 보였다고 했다. 그는 “장타왕의 자부심을 내려놓는 게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걸 내려놓지 않고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스트롱 그립에서 정확성을 위해 중립 그립으로 바꾸고 스윙도 조금씩 개조했다. 그리고 지난주 그 변화의 달콤한 열매를 수확했다. 장타라는 짐을 내려놓으니 마음도 홀가분하다고 했다.

김경태도 그랬다. 2011년 일본 상금왕에 올랐던 그는 2013년 상금 20위, 지난해에는 상금 35위까지 밀렸다. 지난 2년간 우승 없이 보낸 그는 “비거리를 늘리려다 몸도 망가지고 심리적으로 쫓겼다”고 했다. 올해부터 그는 장타 욕심을 버리고 스윙을 간결하게 바꿨다. 그 결과 일본 무대에서 3승을 거두며 상금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골프는 자연과의 싸움이자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투쟁하면서도 타협하는 자세다. 일종의 ‘필드의 정치’다. 투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버릴 건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의 강점과 약점을 냉철히 분석해야 한다. 자연과 소통할 줄도 알아야 한다. 두 베테랑 골퍼는 이를 바탕으로 필드와, 그리고 자신과 타협을 했다. 적절한 보상도 받고, 자존심도 새롭게 세웠다.
가오는 순간을 멋지게 포장해 주지만, 말 그대로 ‘허세’이자 ‘찰라’에 불과하다. 자존심과는 같은 듯 다르다. 영화와 현실도 같은 듯 다르다. 때론 그래서 슬프기도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지난주 베테랑 골퍼에게서 배운 교훈이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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