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를 만나다]②최윤수 “내 골프에 역전패는 없어. 허허”](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511171152330167474nr_00.jpg&nmt=19)
그는 올 초만 하더라도 국내 최고령 컷 통과 기록 보유자이기도 했다. 지난 2007년 KPGA 선수권에서 58세11개월1일의 나이로 컷을 통과했다. 그의 기록은 절친한 후배인 최상호(60)에 의해서 올해 깨졌다.
정규 투어에서 11승, 챔피언스 투어에서 26승을 거둔 그는 이달 초 조기봉 인비테이셔널 그랜드 시니어 부문에서도 정상에 오르는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는 “KPGA 선수권에는 70세까지 출전할 계획이지만 이젠 실력이 되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 올해 프로 골퍼 입문 38년째입니다. 과거에는 국내에서 골프가 생소했을 텐데 입문한 계기가 있나요.
“어린 시절 골프장 옆에서 살았어. 지금은 코스가 없어졌지만 어린이대공원이 들어선 군자리 코스였지. 어려서 그곳에서 아르바이트하다 자연스럽게 골프와 인연을 맺은 거야. 프로테스트를 통과한 게 1977년인데 만 30세 때야. 늦은 나이에 통과한 데는 사연이 있지. 내가 22세 때 군대에 갔는데 가기 전 테스트에서 1타 차이로 떨어졌어. 군대 갔다 오고 그러다 보니 7~8년 더 걸린 거지.”
현재 어린이대공원 자리는 과거에는 서울 컨트리클럽이 있던 곳이었다. 골프장이 성동구 군자리에 있어 ‘군자리 코스’라고 했다. 서울 컨트리클럽은 군자리 코스를 1972년 어린이대공원 부지로 기증을 하면서 경기 고양의 한양 골프장을 인수했다. 한 골프장에 두 개의 컨트리클럽이 공존하는 서울-한양CC가 탄생한 배경이다. 또한 당시는 배를 곯던 시절이라 골프장 옆에 살면서 어린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다 프로가 된 경우가 많았다.

-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습니까.
-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이 있다면요.
“1987년 신한동해오픈 우승했을 때야. 당시 상금이 가장 큰 대회였거든. 하하. 하지만 사실 내 골프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프로테스트 합격했을 때야.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거라 절실했다고 봐야지. 물론 어깨 너머로 배웠지만.”
최윤수는 1987년 신한동해오픈과 KPGA 선수권 정상에 오르며 그 해 상금왕을 차지했다. 그해 그가 벌어들인 상금은 4071만4000원이었다.
- 요즘 국내 남자 프로 골퍼들도 힘들지만 예전에는 상금만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기가 더욱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랬지. 예전엔 시합이 일 년에 고작 몇 개 되지 않았잖아. 정규 시합 말고 월례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우승하면 몇 만원 받았어. 그것가지고 먹고살기는 빠듯했지. 그러니까 다들 레슨하고 그랬지. 나는 그래도 태광 등 골프장에 들어가서 경기과장을 했으니까 그나마 나았지. 골프장에서 월급 받아 생활비 충당할 수 있으니까 골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그래서 우승도 많이 했다고 봐야지.”
- 당시는 프로 골퍼라는 직업이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돈벌이도 좋지 않아 결혼 때 반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반대했지. 내가 33세 때 결혼했는데 결혼 후 한 달도 안 돼 우승을 했지. 그때가 아마 7월일 거야. 처갓집에서 굉장히 좋아했어. 결혼 잘 했다고. 하하.”
- 자식들에게는 골프를 시키지 않았나요.
“아들만 둘인데 안 시켰어. 너무 힘들잖아. 소질도 없는 것 같고. 대신 골프채는 한 세트씩 줬지.”
- 가장 아쉬웠던 샷이나 순간은 언제입니까.
“선수들은 항상 우승을 놓치면 아쉽지. 난 퍼팅을 잘 못해서 우승을 많이 놓치곤 했지. 그게 항상 아쉬움으로 남았어. 그래도 역전을 당한 기억은 없어. 최상호도 ‘형님만 역전을 못해 봤다’고 농담을 하거든. 그거는 자랑스러워.”

- 지난해부터 다시 KPGA 선수권에 참가하고 계십니다. 개인적으로는 3승을 거둔 데다 프로골퍼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대회라 애착이 더욱 가실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참가하고 싶으신가요.
“70세까지는 뛰고 싶어. 뭐 체력이야 문제될 게 없는데 스코어가 그래서 고민이야.”
그는 지난 8월 KPGA 선수권에서 첫날 77타, 둘째 날 79타를 쳤다. 컷 기준 타수(141타)보다 15타를 더 쳤다. 그의 고민은 성적은 좋지 않은데 괜히 후배들 자리를 빼앗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KPGA 선수권은 국내 대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디 오픈이나 마스터스의 경우에도 영구 출전 자격이 있는 왕년의 스타들이 참가해 대회를 더욱 빛낸다. 국내 골프대회에서도 그런 전통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
김세영 기자 freegolf@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