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GA 톡!]‘거포의 귀환’ 김태훈 “내년엔 일본 우승”](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511181210190167522nr_00.jpg&nmt=19)
2003년 첫 우승 이후 2년3개월 만에 승수를 추가한 그의 목소리는 다소 들떠 있었다. “생각했던 것 만큼 잘 풀리지 않은 해였다”고 시즌을 돌아본 김태훈은 “그래도 막판에 우승이라도 해 스스로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어 “곧 일본 퀄리파잉스쿨을 치른다. 일단은 통과해 내년부터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뛰겠다. 기왕이면 일본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태훈과의 일문일답.
“원래 생각했던 것만큼 못해 아쉽다. 우승 여부를 떠나서 샷도 그렇고 예상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을 했으니 스스로에게 고맙다.”
-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데상트코리아 먼싱웨어 챔피언십 대회다. 매치플레이라 1명씩만 이기면 되는 데다 대진운도 좋았다. 16강전에서 안재현에게 졌는데 그때도 재현이가 잘 친 게 아니라 앞서 나가다가 내 실수로 무너졌다. 상대가 잘 쳤으면 후회가 되지 않겠지만 너무 많은 내 실수로 무너져 생각이 많이 난다.”
- 2013년 보성CC 클래식 이후 우승 없이 지냈다. 그동안 힘들진 않았나.
“작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 전년도에 너무 잘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있었고,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안 됐다. 초반에는 예선에서도 많이 떨어졌다. 올해는 조금 달랐다. 초반 3개 대회는 괜찮다 이후 성적이 좋지 않았다. 물론 우승을 하면 좋겠지만 안 풀리는 와중이라 우승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또한 먼싱웨어 대회를 끝으로 올해는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시합이 생겨서 보너스라고 여겼는데 덜컥 우승까지 했다.”

- 아버지가 백을 메고 있다. 아버지와는 언제부터 호흡을 맞췄나. 의견 충돌은 없나.
“학생 때부터 가끔 프로 대회에 나올 때면 아버지가 백을 메셨다. 2007년 투어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면서 아버지가 줄곧 캐디를 맡았다. 당시 집안 형편이 풍족하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투어를 뛰면서 상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어서 아버지가 시작한 거다. 성적이 어느 정도 나기 시작하면서 전문 캐디를 고용할 수준이 됐지만 그 때도 아버지가 계속 백을 메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캐디 일을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나 역시 나쁘지 않다. 사실 올해도 전문 캐디를 구하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한다고 했다. 프로 생활 초반에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화도 내셨다. 하지만 1~2년 후부터는 시합장에 오면 캐디 일만 하겠다고 하더라. 캐디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아들을 보니까 화가 났다고 했다. 그러면 서로 트러블이 생기니까 캐디 역할만 하겠다고 한 거다.”
- 이번 투어 챔피언십 우승 후 아버지가 뭐라고 하던가.
“그냥 잘 했다고 하더라. 물론 여기저기서 축하전화는 많이 받았다.”
- 큰 아버지는 전 야구선수 김준환이고, 아버지도 축구 선수 출신이다. 여자 프로골퍼인 김상희가 사촌 누나로 알고 있다. 스포츠 집안이다. 이런 피를 물려받은 것 같나.
“유전자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동생은 운동에 젬병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 어린 시절 아이스하키 선수 활동은 언제까지 했나.
“초등학교 6학년까지 2년 정도 했다. 학교 대표로도 나갔다. 공부하라고 방에 넣어두면 30분 만에 병이 나는 스타일이었다.(하하) 축구 등 원래 뛰어다니는 운동 좋아했다.”
- 골프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당시 전주에는 중학교에 아이스하키부가 있는 곳이 없었다. 아이스하키를 계속 하려면 서울로 전학을 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걸 해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큰아버지가 골프를 권했다. 집안 형편이 골프를 시킬 형편은 아니었지만 아이스하키 그만 두게 하려고 했다. 남들 코스 4번 나갈 때 나는 한 번 나갔다. 거의 한 달에 한 번이었다. 그러다 박영수 프로님 만나면서 코스도 매일 돌게 됐다. 무식할 정도로 연습도 많이 했다. 6홀짜리 퍼블릭 코스 3바퀴 도는 등 매일 1300개 정도의 볼을 쳤다. 골프 입문 1년3개월 만에 중고연맹 대회에 나갔는데 73타를 쳤던 기억이 난다.”
- 한동안 드라이버 입스로 고생했다. 어떻게 이겨냈나.
“8년간 고생했다. 당시에는 볼을 치면 전부 우측으로 날아갔다. 국가대표 되면서 입스가 왔다. 그래도 입스가 온 와중에도 프로테스트 통과하는 등 할 건 다 했다. 하지만 투어에 나가니 안 통하더라. 첫 해에 한 번도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시드전은 주로 군산 골프장에서 열리는데 거기는 OB 구역이 별로 없어서 옆으로 볼이 날아가도 괜찮지 않은가. 그래서 시드전을 치러서 투어에 올라가고, 카드를 잃고 시드전을 다시 치르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 2012년에는 시드를 못 땄다. 당시 나갈 시합이 없으니 동네 프로들과 심심풀이로 내기골프를 하곤 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하니까 골프가 재미있고, 실력도 되돌아 왔다. 몇 개월을 그렇게 놀다가 대기 순번으로 한 번 나갈 기회가 생겼는데 첫날 OB를 한 번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플레이는 만족스럽지 않았고 아버지도 경기 후 ‘참 볼 못 친다’고 했다. 그런데 경기 후 성적을 보니 내가 3등이더라. 이게 뭔가 싶었다. ‘OB만 안 나면 이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날도 OB가 없었다. 결국 그 대회에서 32등을 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 후 2부 투어 나가고 모두 톱5 안에 들고, 큐스쿨도 통과했다. 이듬해 다시 정규 투어 복귀하면서 목표를 톱10 입상으로 잡았다. 그런데 첫 대회에서 공동 9위를 했다. 두 번째 대회에서는 공동 6위를 하고, 아카데미 투어에 나가서 우승했다. 그리고 정규 투어인 보성CC클래식에서 우승한 거다. 불과 1년도 안 된 시기에 일어난 변화다. 2012년에 쫓김 없이 필드를 떠나 있었던 게 약이 됐다.”
- 이제 다시 승수를 보탰다. 내년 목표는.
“일단 일본에 진출하는 거다. 일본 큐스쿨 3차전은 자신 있는데 최종전이 열리는 곳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어서 그게 걱정이다. 일본에 진출한다면 그곳에서도 우승하는 게 목표다.”
- 장타로 유명하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한 마디 조언한다면.
“세게만 때리려 하지 말고, 정타를 때리는 거다. 스윙 스피드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강하게 치는 것보다는 정타를 때리는 게 거리를 늘리는 데 효과적이다. 방향성도 좋아진다.”
![[KPGA 톡!]‘거포의 귀환’ 김태훈 “내년엔 일본 우승”](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1511181210190167522nr_02.jpg&nmt=19)
△ 김태훈의 골프 클럽과 볼
종류 모델명(로프트)
드라이버 타이틀리스트 915 D3(8.5도)
페어웨이우드 타이틀리스트 915 Fd(15도)
하이브리드 타이틀리스트 816 H1(19도)
아이언 타이틀리스트 714 MB(4번~PW)
웨지 타이틀리스트 SM4(52도, 58도, 64도)
퍼터 스코티 카메론 뉴포트2 프로토타입
볼 타이틀리스트 프로 V1x
김세영 기자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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