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50. 마지막에 웃은 최후의 챔피언 배드민턴 방수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1228073602072148f6b75216b21121740159.jpg&nmt=19)
방수현은 일찍부터 대한민국 배드민턴을 대표하는 여자 선수였다. 그러나 세계 정상 정복은 꽤나 늦었다.
방수현은 1989년 1월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하지만 그해 전국체전에서 허리 부상을 입는 바람에 바로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일념으로 파고 든 덕분에 1991년 3월 다시 국가대표에 합류했다.
어린 선수에게 허리 부상은 사실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부상 후유증도 문제지만 트라우마가 만만찮다. 그러나 방수현에게 트라우마는 부상이 아니었다. 동시대 최강자인 인도네시아의 수산티였다.
한 살 위의 수산티는 늘 방수현보다 먼저, 그리고 높은 곳에 있었다.
1991년 세계혼합단체선수권대회 우승 주역인 방수현은 올림픽 직전 1992년 전영오픈 단식 준우승으로 상승세속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맞이했다.
‘만년 2인자’의 멍에를 쉽게 벗지 못했던 방수현은 올림픽 해에 열린 1996년 전영오픈에서 오랫동안 그를 괴롭히던 천적들을 차례로 물리쳤다. 준결승에서 수산티를 꺾었다. 결승에선 또 한명의 라이벌 예자오잉(중국)을 잡았다.
모처럼의 단식 챔피언. 올림픽 청신호였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4강전. 방수현은 또 수산티를 만났다. 지면 금메달은커녕 메달 구경도 못할 판이었다. 하지만 한 번 승리를 맛본 방수현에게 수산티는 더 이상 트라우마가 아니었다.
2-0, 셧아웃. 그리고 결승에서 인도네시아의 겁 없는 신예 미아 아우디나 역시 2-0으로 물리쳤다. 방수현은 그렇게 마지막 올림픽에서 배드민턴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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