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는 '센터 놀음'이라고 말할 정도로 센터 비중이 경기에서 절대적이다. 사진은 '공룡 센터'샤킬 오닐이 LA 레이커스 시절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10602072252056285e8e9410871751248331.jpg&nmt=19)
미국용어사전 등에 따르면 스포츠에서 센터라는 말은 19세기와 20세기에 많이 사용됐다. 이 말은 원래 14세기말 프랑스어 ‘Centre’에서 넘어왔으며 라틴어 ‘Centrum’이 뿌리이다. 원형의 중간점, 사물의 중심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야구에서 외야 가운데를 맡는 수비수를 ‘센터 필더(Fielder)’, 축구에서 최전방 공격수를 ‘센터 포워드(Forward)’라고 불렀다. 1891년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농구를 창안한 이후 센터는 가드, 포워드와 함께 주요 포지션으로 운영했다. 초창기 공격수의 볼을 손으로 저지하는 ‘핸디 체킹(Hand Checking)’이 금지되면서 가장 키 큰 선수가 골밑에 버티고 상대 공격을 저지하는 수비 방법이 중요한 전술로 활용됐다. 골밑을 내주면 많은 실점을 하기 때문에 센터가 초창기 농구 때부터 중요한 포지션이 된 이유였다.
5번으로 불리는 센터는 보통 팀에서 키와 체격이 가장 큰 선수가 맡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NBA 기준으로 1980-90년대 216cm 이상 되는 장신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3초룰과 기동력 문제 등으로 인해 평균 키가 좀 낮아졌다. 2010년대 들어서는 센터 신장은 208cm에서 213cm 정도가 일반적이다.
NBA서는 전통적으로 센터에서 슈퍼스타들이 많이 배출됐다. 최고 센터 계보는 1950년대 조지 마이칸(1924-2005)로부터 출발한다. LA 레이커스 전신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에서 8년동안 뛰며 6번 우승을 이끌었다. 208cm로 빅맨의 시작을 알렸던 선수였다.
1960년대는 윌트 체임벌린(1936-1999)의 시대였다. 216cm인 그는 필라델피아 76ers(1959-1968)와 LA 레이커스(1968-1973)를 거치며 NBA 챔피언 2회(1967, 1972), NBA 정규시즌 MVP 4회(1960, 1966-68) 등을 차지했다. NBA 사상 최초로 3만득점(31,419점), 2만리바운드(23,924개)를 돌파한 선수였다. 필라델피아 소속이던 1962년 3월3일 뉴욕 닉스전에서 체임벌린은 1경기 100점이라는 불멸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3점슛이 없던 시절 필드골 36개(72점), 자유투 28개(28점)로 꼭 100점을 채웠다.
1980년대 필라델피아 76ers 208cm 센터 모제스 말론(1955-2015)에 이어 1990년대 하킴 올라주원(213cm)을 필두로 데이비스 로빈슨(216cm), 패트릭 유잉(213cm) 등이 최고 센터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이밖에 알론조 모닝(206cm), 브래드 도허티(213cm), 디켐버 무톰보(218cm) 블라디 디박(216cm) 등이 있었다.
‘공룡 센터’ 샤킬 오닐(216cm)은 올랜도 매직(1992-1996) LA 레이커스(1996-2004) 마이애미 히트(2004-2008) 피닉스 선즈(2008-2009)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2009-2010) 보슨턴 셀틱스(2010-2011) 등을 거치는 동안 막강한 피지컬을 앞세워 NBA 챔피언 4회(2000-2002, 2006) 파이널 MVP 3회(2000-2002)를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 역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의 중국의 ‘만리장성’ 야오밍(228cm)이 최장신 센터로 위력을 보였다.
한국 농구서는 농구대잔치 시절 장신센터 한기범 (205cm)이 고공 농구 시대를 열었으며 김유택(197cm) 서장훈(205cm) 김주성(205cm) 하승진(221cm) 등이 프로농구에서 활약을 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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