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일본 시운마루호 침몰사고는 1955년 5월11일 오전 6시56분 수학여행을 떠난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태운 일본 국유철도 우코연락선(宇高連絡船) 소속 철도 연락선(기차 수송 연락선) 시운마루호(紫雲丸)가 같은 철도 연락선인 제3우코마루(第三宇高丸)와 충돌하여 168명이 사망한 해양 사고다. 이 사고는 전후 일본 국철 5대 사고 중 하나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치 현 초등학생과 고치 현 중학생을 태운 시운마루호는 안개가 끼었는데도 출항을 강행했다. 시운마루호는 세토 내해 메기지마(女木島) 남서쪽 해역에 다다랐다. 이 해역은 조수 간만의 차도 크고 조류도 빠른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게다가 기관실 엔진룸 복수기와 주배전장치까지 폭발하여 선내 전체가 정전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선내 침수를 막아 침몰을 지연시키는 역할인 수밀문이 정전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이미 선미 쪽에 물이 차버린 탓에 선원들도 수동으로 폐쇄하는 것을 포기했다. 배가 좌현으로 급속도로 기울자, 승객들까지 황급히 우현으로 몰리는 아수라장이 됐다. 힘이 일반 남성보다 약한 어린이와 청소년은 그대로 배 안에 남겨져 희생되고 말았다.
한편 서로 부딪치긴 했어도 제3우코마루는 상대적으로 멀쩡했고, 파손된 시운마루호 우현 기관실의 침수 진행을 막으면서 조난 당한 승객들을 옮겨 태우려고 좌현으로 완전히 틀어 배 엔진을 전속력으로 전진시켜 밀어 붙었다. 제3우코마루가 접근하는 광경을 보자마자 사람들은 재빨리 배를 옮겨타는 가운데 인솔하는 교사들은 선내에 남겨진 학생들을 구하러 갔다. 하지만 이미 학생들은 이미 들어찬 바닷물에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고, 구하러 내려온 교사들 역시 함께 희생되고 말았다.
희생자들 중에 학생들이 많았던 것은 우선 주변 어른들이 정신없이 서로 밀쳐 대피가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구명조끼를 수납한 곳에 손이 닿지 않았고 선원들이 배포한 구명 조끼를 입으려 해도 착용법을 몰랐다는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사건 여파로 일본에 있는 거의 모든 학교에는 수영장을 설치했으며 수영 교육을 의무화했다. 또 일본 명물인 세토 대교는 이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국에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자 일본 시운마루호 사고가 재조명받았다. 세월호 사고는 인천에서 제주를 오가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맹골수도)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이 사망, 실종된 대형 참사이다. 특히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하였으며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이 참사로 피해 학생이 집중된 경기도 안산시와 와 전라남도 진도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국민들의 사회적 충격이 매우 컸던 국가 대형참사였던 이 사고 이후 한국은 갈등과 분열등 엄청난 후푹풍을 겪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일본 시운마루호 침몰사고이후 수영 교육 의무화와 같은 국민 안전 사고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영은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수단이다. 어릴 적부터 미리 수영 기초를 배우면 물에 빠지는 긴급 사태를 맞을 때 위기를 빠져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아직도 초, 중고교에 수영장을 제대로 갖춘 곳이 별로 없고 수영 교육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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