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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58] 북한 농구에선 왜 '센터'를 '중앙공격수'라 말할까

2026-01-08 05:49:29

2000년대 초반 북한 최장신 센터(2m35)로 활약하던 리명훈의 덩크슛 모습
2000년대 초반 북한 최장신 센터(2m35)로 활약하던 리명훈의 덩크슛 모습
외래어 ‘센터’는 영어 ‘center’를 소리나는대로 옮긴 말이다. 일반적으로 ‘중심, 중앙’이라는 뜻이다. 어떤 분야의 전문적·종합적 기능이나 설비가 집중되어 있는 것을 말할 때 쓴다. ‘문화 센터’, ‘수리 센터’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스포츠에선 축구·배구·농구 등 단체 구기 종목에서 중앙에선 공격수나 수비수를 의미한다.

center는 라틴어 ‘centrum’에서 왔으며, 이는 다시 그리스어 ‘κέντρον(kéntron)’에서 유래했다. 14세기말 프랑스어 ‘centre’에서 영어로 넘어왔다. 원형의 중간점, 사물의 중심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19세기 후반 근대 스포츠가 체계화되면서, center는 ‘중앙에 서는 선수’를 가리키는 보편적 용어가 됐다. (본 코너 400회 ‘왜 센터(Center)라고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2년 12월10일자 ‘조선일보사급각단체후원하(朝鮮日報社及各團體後援下)에 용장맹사(勇將猛士)의전투(戰鬪)’ 기사는 ‘량군의 선수들은 서로 악수를한후 즉시 경기를시작하게되야 몬져 미국직업야구단이 수비를 하게되얏스며 우리의전조선군은 빼ㅅ틩을 들고 나오게되얏다 쳐음으로 젼조선군의 샌터 마춘식군이 나스며「히트」를치자 수비에 능란한 미군측에셔는 즉시 하잇뽀ㄹ을 밧게되야 무참하게나 쳐음갈긴 뽀ㄹ이 져들의 수즁에 드러가자 마군은 아웃이되고 말앗다 그후에 박텬병군이 다시 홈으련을 게획하고 뻬쓰에나왓스나 미군의피쳐로 유명한 편낙크군의 능란한뽀ㄹ을갈기얏스나 산싱으로 그만죽게되얏다 이와갓치운리의젼조선군들은 의긔를 분발하야 빼ㅅ틔ㅇ을들고싸오고자 하얏스나 한점도 엇지못하고 노홈을당하게되얏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미군(미국 직업야구단)과 전조선군의 야구 경기 기사로 ‘샌터 마춘식군’, ‘빼ㅅ틩 , 빼쓰’, ‘하잇뽀ㄹ’, ‘산싱(삼진), ’노홈(노 히트)‘ 등 당시 표기가 등장한다. 이런 단어들은 일본을 거친 영어 스포츠 용어로 근대 스포츠가 ‘식민지 언어 공간’ 속으로 유입되는 순간을 그대로 보여준다.
북한 농구에서 센터를 ‘중앙공격수’라 부른다. 이는 단순한 번역상의 차이가 아니다. 이 용어에는 스포츠를 바라보는 북한식 세계관과 언어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어 센터가 공간상의 위치를 가리키는 중립적 명칭이라면, 중앙공격수는 위치와 역할, 나아가 전술적 위상을 동시에 규정하는 말이다.
.북한 체육 용어의 기본 원칙은 외래어를 소리대로 옮기지 않고, 기능과 임무를 풀어 설명하는 데 있다. 센터는 코트 중앙에서 몸싸움을 통해 골밑을 장악하고 득점의 마침표를 찍는 선수다. 그래서 ‘중앙’과 ‘공격수’가 결합한다. 이는 리바운드를 ‘판공잡기’, 어시스트를 ‘득점련락’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본 코너 1652회 ‘북한 농구에선 왜 ‘어시스트를 ’득점련락‘이라 말할까’, 1653회 ‘북한 농구에선 왜 '리바운드'를 '판공잡기'라고 말할까’ 참조)

더 중요한 것은 ‘중앙’이라는 단어가 지닌 상징성이다. 북한에서 중앙은 단순한 위치가 아니라 핵심과 중추를 뜻한다. 정치든 군사든 중앙은 언제나 결정과 힘의 중심이다. 이런 인식은 농구 코트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중앙공격수는 단순히 키가 큰 선수가 아니라, 공격의 무게중심이자 팀 전술의 축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센터를 ‘중앙수비수’가 아니라 ‘중앙공격수’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센터를 수비의 최후 보루로 보는 미국식 인식과 다르다. 북한 농구에서 센터는 골밑을 지키는 방패이기 이전에, 상대를 정면으로 압박하는 주력 병기다. 스포츠 용어에 군사적 어휘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중앙공격수라는 말은 북한 농구의 전술관과 언어관을 동시에 드러내는 상징적 표현이다. 농구 용어 하나에도 체제의 사고방식과 세계 인식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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