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57] 바둑에서 왜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을 사용할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7280721470247105e8e941087118222121234.jpg&nmt=19)
이 말은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에 이 네 글자가 그대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조선 시대에 이 뜻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도덕경을 비롯한 중국 고전을 폭넓게 읽었기 때문에, 그 사상은 다양한 문집과 주석서에서 인용됐다.
우리나라에서 이 표현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5년 1월 1일 자 「『농중(籠中)의 조(鳥)』 만히 개량되얏다」라는 기사에서 "소위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 더 크게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사용하는 '늦게 꽃피우는 큰 인물'이라는 의미가 이미 100여 년 전 언론에서도 통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바둑 실력의 성장 또한 다르지 않다. 뛰어난 재능은 출발을 앞당길 수는 있어도 완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깊은 형세 판단, 상대의 심리를 읽는 통찰, 끝내기에서 한 집을 다투는 정교함은 오랜 실전과 수많은 실패를 거치며 비로소 몸에 밴다. 그래서 바둑계에서는 어린 천재를 칭송하면서도, 긴 세월 묵묵히 실력을 쌓아 정상에 오른 기사를 더욱 깊은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에게 붙는 가장 아름다운 찬사가 바로 대기만성이다. (본 코너 1808회 ‘바둑 선수는 왜 ‘기사(棋士)’라고 부를까‘ 참조)
바둑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게임이기도 하다. 당장 잡을 수 있는 돌보다 더 큰 흐름을 선택하고, 눈앞의 한 집보다 미래의 스무 집을 내다보는 안목이 승부를 좌우한다. 때로는 한 수를 참는 것이 한 수를 두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나 그 기다림이 결국 승부를 바꾸는 힘이 된다. 대기만성이 말하는 '늦음'은 게으름이 아니라, 때를 아는 지혜와 완성을 향한 인내인 셈이다.
오늘날 무엇이든 빨리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빠른 성과와 즉각적인 결과가 능력의 척도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하지만 바둑판 위에서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 서두르지 않은 한 수가 명수가 되고, 오래 준비한 세력이 승부를 결정하며, 끝까지 흔들리지 않은 사람이 결국 미소를 짓는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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