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승이라는 말은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는 검색되지 않는다. 적어도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관용어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서도 ‘辛勝(しんしょう)’은 ‘간신히 이긴 승리’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한자 문화권에서 공유된 근대어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시절, 스포츠 기사에서 신승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7년 5월4일자 ‘YMCA농구(籠球) 원정여록(遠征餘錄) 【팔(八)】’ 기사는 ‘결과천신만고(結果千辛萬苦)로 사점차이(四點差異)로 신승(辛勝)하엿스나 께임다옵지는 못하엿다’고 적었다. 이 기사에는 '천신만고(千辛萬苦)'와 '신승(辛勝)'이 연달아 쓰였다. '辛'이 모두 '고생스럽고 힘들다'는 의미를 지니므로, 의도적으로 수사적 효과를 노린 표현으로 보인다. 1920년대는 야구·축구·농구 등 근대 스포츠가 신문을 통해 대중화되던 시기였으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경기 기사 문체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둑은 최종 집 계산에서 보통 0.5집, 1.5집, 2.5집처럼 작은 차이도 승패를 가른다. 프로 기사들의 대국에서는 대부분 실력이 비슷해 큰 집 차이가 잘 나지 않는다. 4집반은 숫자로 보면 적지 않아 보이지만, 19×19 바둑판 전체 규모와 프로 대국의 흐름을 고려하면 비교적 접전 끝에 난 승부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집은 한 번에 쌓이는 점수가 아니라, 판 전체에서 조금씩 축적된 우세가 마지막 계산에서 드러난 결과다. 초반에는 불리했던 흐름이 중반에 뒤집히고, 끝내기에서 다시 역전될 수도 있다. 결국 4집반이라는 숫자는 경기 내내 이어진 팽팽한 긴장감의 결과일 뿐, 일방적인 우세를 의미하지 않는다.
신승이라는 표현에는 승자를 향한 찬사도 담겨 있다. 압도적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어려운 승부를 견뎌냈다는 의미다. 동시에 패자에 대한 존중도 담겨 있다. 조금만 달랐어도 결과가 바뀔 수 있었던 승부였음을 인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4집반 승리가 신승인 것은 아니다. 초반부터 큰 우세를 유지하다가 끝내기 과정에서 차이가 조금 줄어든 4집반 승리도 있고, 마지막 한두 수에서 승부가 갈린 4집반 승리도 있다. 그래서 신승은 집 수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 승부의 내용과 긴장감을 평가하는 표현에 가깝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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