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디에이고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으며 미국 진출에 성공했고, 김하성과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 한국 팬들의 기대도 컸다. 불펜 보강이 필요했던 샌디에이고에서 고우석이 새로운 필승조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벽은 높았다. 스프링캠프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지만 고우석은 개막 로스터 진입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마이너리그행. 그것도 트리플A가 아닌 더블A였다. 한국에서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군림했던 선수가 미국에서는 두 단계 낮은 곳에서 다시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대했지만, 미국 생활은 여전히 순탄하지 않았다.
마이애미에서도 마이너에서의 경쟁은 계속됐다. 메이저리그 로스터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매 순간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다시 찾아왔다.
고우석은 DFA(양도지명)를 경험했다.
DFA는 메이저리그 선수에게 사실상 생존 시험대다.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된 고우석은 마이너리그 신분을 받아들여야 했다.
고진감래였을까. 2026년 고우석은 마침내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다시 마이너로 강등됐다.
여기서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트리플 A 경기 중 발생한 이물질 논란이었다.
메이저리그는 투수들의 이물질 사용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무대다. 고우석은 이 과정에서 퇴장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메이저리그 계약으로 시작한 꿈. 그러나 한 선수가 겪었다고 하기에는 믿기 힘든 사건들이 이어졌다. 결국 고우석은 미국 도전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을 선택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아쉬움이 남는 도전이었다. KBO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꿈꿨던 메이저리그 성공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고우석의 도전이 실패로만 평가받을 수는 없다. 낯선 환경, 치열한 경쟁, 끊임없이 찾아온 변수 속에서도 그는 계속 도전했다.
고우석의 미국 도전기는 화려한 성공담은 아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과 좌절, 재도전이 이어진 한 편의 드라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고우석의 미국 3년. 그 파란만장한 시간은 앞으로도 한 투수를 설명하는 가장 특별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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