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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어쩌다 달리기도 마음대로 못하는 사회가 되었나

자유로운 움직임조차 제약받는 사회의 초상

2025-11-14 06:24:15

지난 4월 19일 제1회 마포 서윤복 마라톤대회 출발 모습. [사진제공=김원식]
지난 4월 19일 제1회 마포 서윤복 마라톤대회 출발 모습. [사진제공=김원식]
최근 한 시민이 도심 도로에서 조깅을 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다. 교통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설명에 일리는 있으나, 많은 이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달리기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가?"

​한때 달리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 중 하나였다. 별다른 장비나 타인의 허락 없이, 누구나 자신의 몸만으로 누릴 수 있는 해방의 행위였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에서 달리기는 '허용된 장소'에서, '안전장비를 갖추고',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시간'에만 가능한, 일종의 '허가 행위'로 전락했다. 운동이 행정 관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 현상은 단순한 안전이나 규제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우리는 어느새 모든 일상적 행동에 '허락'을 구하는 사회에 진입했다. 공원에서 뛰면 소음 민원이 제기되고, 자전거 도로를 걸으면 경고를 받는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공을 차면 '위험하다'며 쫓겨나고, 마을 어귀에서 운동하는 노인들조차 '시설물 훼손' 우려로 제지를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달리기가 ‘눈치 운동’이 된 사회



공동체의 질서와 안전은 분명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그 논리가 개인의 기본적 자유를 일방적으로 압도할 때, 사회는 건강성을 잃는다. 이제 한국에서 달리기는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니라, 러닝화 끈을 매는 순간부터 주변의 시선과 민원 가능성까지 의식해야 하는 '눈치 운동'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물리적 공간의 부족, 타인의 행위에 대한 과민한 민원 문화, 행정의 과도한 개입, 그리고 무엇보다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 붕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시민 개개인의 자율성보다 '통제 가능한 질서'가 우선시 되는 문화는 결국 모든 행동을 위축시키고 사회의 창의성을 억압한다. 자유롭게 달리는 시민을 '문제 인물'로 간주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자유와 질서의 균형, 인식이 먼저다

​길은 본래 걷고 뛰라고 만든 공간이며, 도시는 규칙의 실험장이기 이전에 인간의 삶터여야 한다. 문제는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민폐'라는 잣대로 서로의 행동을 재단하고 감시하는 우리의 협소한 인식일 수 있다.

​달리기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본능적 행위다. 이 본능적인 자유마저 억압당하는 사회는 이미 병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다' 달리는 것조차 힘들어졌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달리기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사회는, 머지않아 생각하고 말하는 자유 역시 통제하려 들 것이다. '문제없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자유로운 도시'를 위한 사회적 논의와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

[특별 기고] 어쩌다 달리기도 마음대로 못하는 사회가 되었나


[김원식 마라톤 해설가·전남 장성중 교사]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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