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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18] 북한 육상에서 왜 '레인'을 '주로칸'이라 말할까

2026-03-09 05:51:34

지난해 평양국제마라손경기대회 모습
지난해 평양국제마라손경기대회 모습
스포츠 용어 ‘레인’은 영어 ‘lane’을 우리말로 음차한 말이다. 육상에서 선수들이 달리는 주로를, 수영에서 선수들이 헤엄쳐 가야할 주로를 각각 의미한다. 볼링에선 볼을 굴리는 마루를 뜻한다.

레인이라는 말의 뿌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이 단어는 고대 영어 ‘lane’ 또는 ‘lanu’에서 유래했는데, 원래 의미는 ‘좁은 길’ 혹은 ‘골목길’이었다. 마을 사이를 잇는 작은 길이나 사람들이 지나가는 좁은 통로를 가리키던 생활 언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단어는 단순한 골목길을 넘어 구획된 통로를 의미하는 말로 확장됐다. 오늘날 도로의 차선, 볼링장의 길, 수영장의 구획을 모두 lane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근대 스포츠가 규칙을 갖추기 시작한 19세기 영국에서도 이 단어가 그대로 쓰였다. 트랙을 여러 구획으로 나눠 선수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고 달리도록 하면서 각 구역을 lane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후 국제 육상 규정을 관장하는 세계육상연맹 역시 이 표현을 공식 용어로 사용하면서 레인은 세계 스포츠의 공통어가 됐다.(본 코너 830회 ‘수영 ‘레인(lane)’에서 중앙이 유리한 이유‘ 참조)
우리나라에서 육상 경기에서 레인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대체로 20세기 초 근대 스포츠가 도입된 이후로 본다. 특히 일제강점기 학교 체육과 근대 육상경기 보급 과정에서 영어식 스포츠 용어가 함께 들어오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31년 7월21일자 ‘구월일일(九月一日)부터실시(實施)할 개정농구규칙(改正籠球規則)’ 기사는 ‘오(五)·『프리드로우레인』의 양측(兩側)에 지역(地域)을 구분(區分)하기위(爲)하야 획(劃)한 양(兩) 선(線)은 반드시 실시(實施)할것 따라서 규칙제일장제사조(規則第一章第四條)의 주(註)는동조(同條) 의 정문(正文)에드러감’이라고 전했다. 당시 기사는 농구 규칙을 설명 부분으로, 당시 이미 ‘프리드로우 레인(free throw lane)’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농구에서 자유투 라인 앞 사각 구역을 가리키는 이 표현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사용된다.
북한 육상에선 레인을 ‘주로칸’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한자어 ‘주로(走路)’는 달리는 길을 뜻하고, 순우리말 ‘칸’은 구획을 의미한다. 두 단어를 합치면 ‘달리는 길의 구획’이라는 뜻이 된다. 즉 레인의 기능을 그대로 풀어 설명한 번역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북한 체육 용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북한은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뜻을 풀어 우리말로 번역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래서 ‘릴레이’는 ‘이어달리기’, ‘해머던지기’는 ‘추던지기’, ‘트랙’은 ‘달리기장’ 또는 ‘주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언어 정책 속에서 스포츠 용어도 자국식 어휘로 정리된 것이다. (본 코너 1714회 ‘북한에서 왜 '트랙'을 '달리기장'이라 말할까’, 1715회 ‘북한에서 왜 ‘해머던지기’를 ‘추던지기’라고 말할까‘ 참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번역식 표현이 때로는 더 직관적이라는 사실이다. 영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레인은 낯설 수 있지만 주로칸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비교적 쉽게 이해된다. 언어가 본래 소통을 위한 도구라면, 설명식 표현이 갖는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물론 국제 스포츠 현장에서는 영어 기반 용어가 사실상 공통어이기 때문에 레인이 더 널리 쓰인다. 하지만 같은 트랙을 두고 레인이라 부르느냐 주로칸이라 부르느냐의 차이는 단순한 어휘 차이를 넘어 언어 문화의 차이를 보여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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