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LG배에서 신민준(오른쪽) 9단이 이치리키 료 9단을 꺾고 우승했다.[한국기원 제공]](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6140724120894405e8e941087397231232.jpg&nmt=19)
어원적으로는 중국 바둑 용어에서 비롯된 한자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일본 바둑계에서도 같은 한자 ‘敗着(はいちゃく, 하이차쿠)’를 사용한다. 다만 오늘날 한국어에서 패착이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비유어로 널리 쓰이는 정도는 일본어나 중국어보다 훨씬 강한 편이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서 패착이라는 말을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다. 이는 적어도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문헌어로서 패착이 널리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현재 사용하는 패착은 근대 이후 바둑 용어로 정착한 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패착에서 눈여겨볼 것은 '착(着)'이라는 글자다. 바둑에서 착은 돌을 놓는 행위를 뜻한다. 따라서 패착은 단순히 잘못된 행동이나 실수가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선택한 한 수가 결국 패배의 원인이 된 경우를 가리킨다.
이 점에서 패착은 실수와 다르다. 실수는 순간적인 오류를 의미하지만, 패착은 결과와 연결된 판단이다. 바둑에서는 작은 실수가 수도 없이 발생한다. 집을 몇 집 잃을 수도 있고, 효율이 떨어지는 수를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실수들이 모두 승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패착은 오직 나중에 전체 판세를 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그것은 사건이 아니라 해석이며, 행위가 아니라 의미다.
바둑은 서양의 체스처럼 상대의 왕을 잡는 게임이 아니다. 바둑에서는 한 수가 즉각적인 승패를 만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흐름이다. 지금은 평범해 보이는 수가 수십 수 뒤에 거대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바둑의 사고는 단일한 사건보다 관계와 맥락을 중시한다.
패착이라는 말 역시 이러한 세계관을 반영한다. 한 수 자체는 그 순간에 옳아 보였을 수 있다. 오히려 대부분의 패착은 최선이라고 믿었던 선택에서 나온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판 전체가 완성되면 그 선택의 진짜 의미가 드러난다. 그래서 패착은 현재의 개념이 아니라 회고의 개념이다. 우리는 결과를 본 뒤에야 비로소 "그 수가 패착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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