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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17] 바둑에서 왜 ‘팻감’이라 말할까

2026-06-18 05:11:27

 신민준 9단이 15일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2국에서 돌을 놓고 있다. [한국기원]
신민준 9단이 15일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2국에서 돌을 놓고 있다. [한국기원]
‘마지막에 웃은 쪽은 왕싱하오였다. ‘팻감’이 풍부한 상황에서 차분하게 끝내기를 진행하며 반집 우세를 지켜냈다.‘

지난 15일 전북 전주시 왕의지밀에서 열린 제31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 2국에서 신민준 9단을 맞아 중국의 왕싱하오 9단이 328수 만에 흑 반집승을 거두었을 때, 모 신문이 전한 바둑 경기 기사 내용의 일부이다.

바둑에서 '팻감'은 ‘패(覇)를 위한 재료(감)’라는 뜻의 순우리말식 용어이다. 이 말은 한자어 ‘패(覇:와 한글 ’감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감은 순우리말 접미적 표현으로, ‘재료’, ‘거리’, ‘대상’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야깃감’, ‘놀림감’, ‘구경거리’와 비슷한 용법이다. 따라서 팻감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패를 할 때 사용하는 재료’, 즉 패싸움에서 상대가 반드시 응해야 하는 위협 수단을 의미한다.
일본 바둑에서는 이를 ‘코다테(コウ立て, 劫立て)’ 또는 ‘코재(コウ材, 劫材)’라고 부르는데, 한국의 팻감은 일본어를 직역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식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표현이다. 패 재료‘라는 뜻을 토박이말 접미사 ’-감‘으로 풀어낸 셈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선 1970년대 팻감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경향신문 1973년 9월15일자 ‘바둑夜話(야화) <37> 第(제)6話(화)棋敵(기적)과 詩敵(시적) (3)’ 기사에서 ‘바둑이 종반전에 들어갈 무렵 반면에는 대마가 죽고 사는 큰 패싸움이 벌어졌는데 김부식은 무슨 착각을 하였는지 팻감을 엉뚱한 곳에 썼다“고 전했다. 당시 신문 기사에 별도 설명 없이 등장했다는 점을 보면, 당시 독자들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미 바둑계에서 정착된 용어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실제 생성 시기는 1960년대 또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바둑에서 패(覇)는 가장 인간적인 싸움이다. 돌을 따고 다시 따는 단순한 규칙 속에 계산과 심리, 형세 판단이 모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패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팻감이다.

초보자들은 팻감을 그저 패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고수들의 시선은 다르다. 팻감은 단순한 교환 재료가 아니라 형세의 가치를 측정하는 저울이다. 어떤 팻감은 집 몇 집의 가치에 불과하지만, 어떤 팻감은 대마의 생사를 좌우한다. 패를 하는 순간 기사들은 자신의 팻감과 상대의 팻감을 동시에 계산하며 보이지 않는 장부를 펼쳐 놓는다.

흥미로운 점은 좋은 팻감일수록 실제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상대가 응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팻감을 많이 가진 쪽은 패를 시작하기만 해도 유리하다. 마치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가 실제 사용보다 존재 자체로 억제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 결국 팻감의 가치는 돌을 놓는 순간보다 이미 그 이전에 형성된다.
프로 기사들의 바둑을 보면 팻감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당장의 이득을 포기하면서도 미래의 패싸움을 대비해 팻감을 남겨 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의 한 집보다 미래의 결정적인 순간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는 바둑이 단순한 전술 게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까지 고려하는 전략 게임임을 보여 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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