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46] 왜 바둑에서는 '후발제인(後發制人)'이라고 말할까](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7170656220890105e8e941087118222121234.jpg&nmt=19)
바둑에서 상대의 공격을 유도한 뒤 반격할 때, ‘후발제인(後發制人)’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성어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늦게 움직여 상대를 제압한다’는 뜻이다. 어원은 중국 고전 병법에서 비롯된 말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출전은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항우본기(項羽本紀)’이다. 항우의 숙부인 항량이 병법의 요체를 설명하며 ‘先發制人, 後發制於人’이라고 말했다. "먼저 움직이면 사람을 제압하고, 늦게 움직이면 사람에게 제압당한다"이라는 말이다. 직역하면 '선발제인(先發制人)'이 원래의 고전적 표현이다. 병법에서는 원칙적으로 먼저 주도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후대에 이 개념이 발전하면서 후발제인이라는 표현도 널리 쓰이게 됐다다. 이는 고전의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먼저 공격하지 않고 상대를 관찰한 뒤 허점을 이용해 제압한다는 전략적 의미를 담아 형성된 관용적 표현이다. 특히 중국 무술, 병법 해설, 그리고 바둑에서 자주 사용됐다.
바둑은 상대보다 먼저 공격하는 것보다, 상대가 무엇을 의도하는지 정확히 읽고 가장 효율적인 대응을 선택하는 게임이다. 섣불리 공격하면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 쉽다. 반대로 상대가 충분히 움직인 뒤 그 의도를 간파하고 응수하면 작은 힘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이 후발제인의 철학이다.
프로 기사들의 대국을 보면 이러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초보자들은 상대가 조금만 침입해도 즉시 몰아붙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강한 기사들은 오히려 한두 수를 양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대신 상대 돌의 약점이 분명해지는 순간 가장 날카로운 한 수를 던진다. 공격은 늦었지만 효과는 훨씬 크다. 이것이 후발제인의 실제 모습이다.
물론 후발제인이 소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바둑에서 기다림은 방관이 아니라 계산이다. 상대가 실수하기만을 바라며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가장 유리한 타이밍을 선택하기 위해 인내하는 것이다. 그래서 후발제인은 '늦음의 미학'이라기보다 '시기의 미학'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오늘날 이 표현은 바둑을 넘어 삶에도 자주 인용된다. 모든 문제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충분히 관찰하고 상황을 이해한 뒤 움직이는 사람이 오히려 더 큰 성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 성급한 결정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기도 하고, 한 박자 늦은 판단이 오히려 가장 정확한 해답이 되기도 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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