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17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바둑 AI 프로그램 카타고와 대국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7180656380996005e8e941087118222121234.jpg&nmt=19)
이날 대국은 신진서가 흑을 잡고 두 점을 먼저 놓는 접바둑으로 진행됐다. 대국 시작 전 AI는 신진서의 승률을 99%, 집 차이는 18집 이상 유리한 것으로 예측했다. 결정적인 장면은 102수였다. 신진서는 중앙 백 대마를 잡기 위해 상대 돌을 포위하는 강수를 던졌다. 하지만 이 수는 결과적으로 무리수가 되면서 형세가 역전되고 말았다. 카타고가 가볍게 타개에 성공하며 백 대마를 살리자 신진서의 예상 승률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본 코너 1811회 ‘왜 바둑에서는 ‘불계’라고 말할까‘, 1844회 ’왜 '접바둑'이라 말할까‘ 참조)
바둑에서는 흑이 먼저 둔다. 바둑의 ‘흑(黑)’은 단순히 '검은색'을 뜻하는 한자이지만, 그 어원은 매우 오래됐다.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黑자는 불에 그을려 검게 탄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구성 요소를 보면, 위쪽은 연기나 불꽃을 나타내고, 아래쪽은 불(火)을 상징하는 형태가 결합되어 있다. 원래 의미는 ‘불에 그을려 새까맣게 된 상태’, ‘그을음(검댕)’이었다. 여기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오늘날의 '검다', '검은색'을 뜻하게 됐다.
우리말 ‘검다’와 한자 黑(흑)은 서로 어원이 다르다. 검다는 한국어 고유어이다. 흑(黑)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한자어이다. 따라서 '흑'은 '검다'를 한자로 표기한 말이지, 두 단어가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자 黑의 가장 오래된 의미는 오늘날의 '검은색'보다도 '그을음' 또는 '불에 탄 검은 상태'에 더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바둑은 빈 공간을 차지해 가는 게임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19×19의 넓은 판 위에서 한 점을 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첫 번째 돌은 단순한 돌 하나가 아니다. 이후의 전개를 이끌고 상대의 선택을 제한하는 출발점이다. 따라서 먼저 두는 쪽은 자연스럽게 일정한 이점을 갖게 된다.
바둑에서는 흑이 먼저 둔다. 그러나 흑의 선착 이점이 그대로 승패를 좌우하지 않도록 '덤'이라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백은 후수의 불리함을 보상받기 위해 일정한 집 수를 미리 얻고 시작한다. 현대 국제 규칙에서는 보통 6집 반이나 7집 반의 덤을 사용한다. 반 집을 더하는 이유는 무승부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흥미로운 점은 덤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옛날에는 실력이 비슷한 기사끼리도 흑이 다소 유리하다고 여겼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보정하지 않았다. 대신 흑과 백을 번갈아 두는 방식이나 여러 차례의 대국을 통해 형평성을 맞추곤 했다. 그러나 바둑 이론이 발전하고 통계 분석이 이루어지면서 선착의 이점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오늘날의 덤 제도가 정착하게 되었다.
바둑판 위의 첫 번째 흑돌은 단순한 시작이 아니다. 그것은 선착의 가치와 공정한 경쟁 사이에서 인류가 찾아낸 균형의 상징이며, 바둑이라는 게임이 오늘날까지 깊은 철학을 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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