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소된 경기만 25경기로 프로야구 42년 역사에서도 낯선 장면이었다. 그리고 8월 11일, 멈췄던 리그가 다시 문을 연 바로 그날, 전국 5개 구장에는 관중이 몰려들며 누적 900만 관중 고지를 넘어섰다. 야구가 멈춘 닷새 동안 관중석은 오히려 그 자리를 더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같은 무게의 짐도 혼자 들 때와 누군가 옆에서 함께 들어줄 때 몸이 느끼는 피로감은 다르다. 사람의 뇌는 힘든 상황과 마주쳤을 때 곁에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지에 따라 그 상황의 무게를 다르게 계산한다. 낯선 언덕길도 혼자 오르면 더 가파르게 느껴지고, 누군가와 함께 오르면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느껴진다는 실험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낯선 사람의 손을 잡고 있을 때보다 신뢰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을 때 뇌의 경보 반응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비슷한 원리를 보여준다.
억지로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었을수록 다시 모였을 때 그 공간이 주는 안도감은 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 원리는 야구장 밖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야근이 예정된 날, 옆자리에 함께 남는 동료가 있는 것만으로 그날 밤이 조금은 덜 무겁게 느껴진 경험이 있다면 그 역시 같은 뇌의 계산법이다.

이번 기록의 의미는 속도에 있다. KBO에 따르면 올 시즌은 100만 관중을 넘어선 시점부터 900만 관중에 이르기까지 매 구간마다 예외 없이 역대 최소 경기 신기록을 갈아치웠고, 사상 첫 리그 전면 중단이라는 변수를 겪고도 그 페이스는 꺾이지 않았다. 900만 관중을 넘어선 시점을 기준으로 전체 경기의 절반 이상이 매진됐고 리그 평균 좌석점유율은 86%를 넘어섰다. 만원 관중 횟수에서는 한화가 41회로 가장 많았고 삼성이 40회, LG가 36회로 뒤를 이었다. 좌석점유율로 보면 삼성이 99.3%, 한화가 98.4%, LG가 95.8%로 세 구단 모두 90%를 넘겼다.
특정 구단의 성적이 좋아서라기보다 리그 전체가 동시에 끌어올린 흐름이라는 뜻이다. 폭염 대책으로 8월 11일부터는 한동안 모든 경기가 오후 7시에 시작됐고, 폭염이 누그러진 25일부터는 다시 평일 오후 6시30분으로 되돌아갔다. 경기 시작 시간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관중의 발걸음은 줄지 않았다. 프로야구는 이제 사상 첫 1300만 관중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숫자로만 보면 1000만은 그저 큰 수치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강제로 떨어져 있던 닷새를 지나 굳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기를 택한 수많은 개별적 선택들이 쌓여 있다. 리그가 멈췄던 닷새 동안 아무도 그 숫자를 대신 채워주지 않았고, 결국 다시 문이 열리자 사람들 스스로 발걸음을 옮겨 그 자리를 채웠다. 다음에 유난히 덥거나 피곤한 날, 혼자 미루려던 약속이 있다면 한번 물어보면 좋겠다. 정말 그 일이 힘들어서 피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함께할 사람이 없어서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뿐인지.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