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역투하는 화이티 포드 [AP=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1010080235002815e8e941087223383096.jpg&nmt=19)
본명이 '에드워드 찰스 포드'인 고인은 뉴욕시 맨해튼 태생으로 1950년부터 1967년까지 오로지 양키스에서만 활약한 왼손 투수다.
통산 236승 106패로 0.690의 승률을 기록한 포드는 20세기 최고 승률 투수로 남아 있다.
이 밖에 월드시리즈 최다 선발등판(22경기), 최다 이닝(146이닝), 최다승(10승), 최다 삼진아웃(94개) 등의 기록에도 그의 이름이 새겨졌다.
다만 1963년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의 왼손 에이스 샌디 쿠팩스와 두 번 맞대결해 모두 패한 것이 옥에 티로 꼽힌다.
![2016년 양키스 행사에 참석한 화이티 포드 [AP=연합뉴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1010080308078015e8e941087223383096.jpg&nmt=19)
당초 대단한 유망주로 여겨지지 않았으나 1950년 메이저리그 데뷔 후 9연승을 달려 최고의 신인으로 주목받았다.
최고 전성기는 1961년이었다. 그해 25승으로 다승왕에 올라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과 월드시리즈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1963년에도 다승 1위에 오른 포드는 아메리칸리그 방어율 타이틀도 두 차례 차지했고, 올스타에도 6차례 선정됐다.
강속구 투수 쿠팩스와 달리 직구,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를 섞어 던지고 팔 동작을 수시로 바꿔 타자를 속인 기교파 투수로 분류된다.
양키스 투수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에서 '회장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손가락에 침 또는 진흙을 묻히거나 반지로 몰래 공을 깎아서 공의 변화를 크게 만드는 부정 투구로도 악명 높았다고 AP는 전했다.
고인은 또 한국전쟁 발발로 미 육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1951∼1952년에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바 있다.
[장성훈 선임기자/seanmania2020@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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