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의 '사람 인(人)'] "대한민국 경제 신화를 낳은 정주영 회장이 어떻게 일을 했는지를 우리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이민우 전 중앙일보 부국장 '정주영이 누구예요' 출간
'쌀집 할머니' 장손인 체육기자
'왕 회장' 정주영을 증언하다

김학수 기자| 승인 2022-09-29 08:25
“정주영 회장(1915-2001)을 대한민국 2030 젊은이들이 모른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현대중공업은 잘 알아도 거대한 현대그룹을 만들고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었던 정주영 회장을 모른다니 말이 안됐다. 정 회장이 내 친할머니가 운영하던 쌀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이야기 등 일화를 중심으로 ‘인간 정주영’의 모습을 되살리려 책을 내게됐다.”

평생 체육기자를 한 이민우(78) 전 중앙일보 부국장이 신간 ‘정주영이 누구예요’라는 책을 냈다. ‘ ’쌀집 할머니‘ 장손인 체육기자, ’왕 회장‘ 정주영을 증언하다’라는 부제를 붙인 책은 그동안 정주영 회장과 관련된 수십권의 평전이나 자서전과는 다르다. 저자와 저자의 친할머니, 그리고 정주영 회장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정주영 회장은 고향인 강원도 통천에서 서울(당시 경성)로 올라 와 막노동을 하다 스무살 때인 1934년 저자의 할머니가 운영하던 ‘복흥상회’라는 쌀가게에서 3년간 종업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3월 문화일보의 ‘그립습니다’ 코너에 ‘정주영과 쌀집할머니’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써 내려간 이 글의 반향이 의외로 좋아 책을 쓰게됐다고 집필 동기를 말한다.

“친구나 선후배들이 격려와 함께 책출간을 권유했다. 주저하고 있을 때 중앙일보 후배인 손장환 LiSa 대표가 정리를 자청했다. 그래서 쌀집 할머니 손자이자 평생 스포츠 기자로 정주영 회장을 가까이 지켜본 내가 책을 내게됐다.”

이민우 전 중앙일보 부국장이 새로 출간한 '정주영이 누구예요' 책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정지원 기자]
이민우 전 중앙일보 부국장이 새로 출간한 '정주영이 누구예요' 책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정지원 기자]


정주영 회장 생애사는 대한민국 근대 산업사

그는 할머니에게 직접 들은 정주영 회장 이야기를 중심으로 체육인 정주영, 정치인 정주영, 아이디어맨 정주영 등 에피소드를 모았다. 정주영 회장의 측근들, 이른바 ‘정핵관’들을 직접 만나서 숨겨진 에피소드들을 발굴했다. 이병규 문화일보 회장,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이충구전 현대자동차 사장, 유병하 전 현대석유화학 사장, 윤만준 전 현대아산 사장, 이영만 전 경향신문 사장, 정신모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이연수 전 외환은행 부행장, 배순학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등이다.

1982년 정주영 회장이 대한체육회장으로 취임한 뒤 체육기자로 처음 인터뷰를 하기도 한 그는 “우리 집안과 관련된 생전의 인연을 중심으로 정주영 회장의 생애를 복원하려고 했다. 내가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정주영 회장을 ‘창조적인 천재’, ‘진취적인 천재’라는데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의리와 정이 가득했던 보스에 대한 그리움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정주영 회장의 생애사는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피와 땀, 눈물을 흘리며 가진 것 하나없는 대한민국을 오늘날 선진국의 반열로 올라가는데 정주영 회장의 신화는 결코 빼어놓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중앙일보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삼성스포츠단 이사와 명지대 체육부장을 거쳐 2019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을 역임했다. 총장 재임중 대학생들에게 정주영 회장에 대해 아는 지 물어봤다고 한다. 학생들은 “정주영이 누구예요?” 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때의 충격이 자신이 꼭 정주영 회장과 관련한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 그는 원래 책 제목을 ‘정주영이 누구예요’, ‘반값아파트가 왜 안돼?’ 두 가지를 갖고 고민을 하다가 젊은이들이 정주영 회장을 잘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워 전자를 선택했다.

“경기고 동기동창인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2009년 1년간 현대가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서울 구치소에서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이 회장을 몇 차례 면회할 때마다 이 회장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라고 충고했다. 형기를 마치고 나온 이 회장은 나에게 20만 자가 넘는 방대한 회고록 원고를 건네줘 책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그가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냥 썩히기에 아깝다는 생각에 영화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그때 제작사의 대답이 ”영화 관객은 주로 2030인데 그들은 정주영을 모른다“였다. 정주영을 모르다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거절하기 위한 핑계라고 받아들었지만 나중에 보니 이게 현실이었다.”

이민우 전 중앙일보 부국장이 쓴 '정주영이 누구예요' 표지.
이민우 전 중앙일보 부국장이 쓴 '정주영이 누구예요' 표지.


정주영 회장 쌀집 자전거 소동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한 모퉁이에 있는 정주영 기념관에 정주영 회장이 저자 할머니인 고 차소둑 여사(1989년 94세로 별세)와 함께 찍은 사진이 실물 크기로 전시돼 있다. 사진 앞에는 쌀 배달 자전거가 놓여 눈길을 끈다. 할머니는 34세 때 청상과부가 돼 남편이 남겨준 쌀가게와 정미소(이창 정미소)를 직접 운영했고, 정주영 회장이 여기서 종업원으로 일했던 것이다.

“ 김수현 작가가 쓴 정주영 회장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에도 나왔던 자전거 소동 이야기를 할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정 회장이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6월 하순쯤 왕십리 큰 집에 쌀 한 가마니하고 팥 한 말을 배달할 일이 생겼다. 할머니가 자전거 탈 줄 아냐고 물었는데, 탈 줄 안다고 해 배달을 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오전에 나간 사람이 저녁이 다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 사고라도 난 게 아닌 지 크게 걱정했는데, 날아 어둑해져서야 진흙투성이가 되어 쌀집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사실은 자전거를 타 본 적이 없다는 그의 고백을 들었다. 정주영 회장의 ”이봐, 해봤어?“라는 도전 정신이 타고난 성품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는 정주영 회장에 대한 할머니의 기억을 전했다. “참 힘도 세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어. 쌀 두 가마니를 양어깨에 짊어질 정도로 힘이 장사였지. 새벽같이 일어나 가게 주위를 깨끗하게 쓸고 물을 뿌렸어. 남들 잘 때 혼자 일어나 일할 준비를 다 한거지. 종업원이 7명 정도 있었는데 제일 막내인 정 회장이 주인공 역할을 하는거야”라고 생전에 할머니가 말을 했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은 쌀집에서 3년동안 일해 모은 돈으로 고향에 30마지기 논을 마련하고 이 땅을 밑천으로 삼아 폐업한 복흥상회 단골손님을 이어받아 1938년 만 23세에 신당동에 ‘경일(京一 )상회’라는 쌀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경일은 ‘경성에서 제일인 쌀가게’라는 뜻이다. 정 회장은 서울여상과 배화여고 기숙사에 쌀을 고정으로 납품하며 남다른 사업 수완을 보였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1년 뒤인 1939년 일제가 전시 군량미확보를 위해 쌀배급제를 실시하면서 쌀가게 문을 닫고 1940년 자동차 정비공장인 ‘아도 서비스’를 인수, 본격적인 사업을 벌이게 된다.

'정주영이 누구예요' 저자 이민우 전 중앙일보 부국장이 자신의 책에 서명을 하고 있다. [정지원 기자]
'정주영이 누구예요' 저자 이민우 전 중앙일보 부국장이 자신의 책에 서명을 하고 있다. [정지원 기자]


정주영 회장과 깊은 가족 인연


정 회장은 매년 명절 때는 물론이고 다른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할머니를 찾아 뵙고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구순을 맞은 1984년 송년회에 정 회장이 할머니를 특별히 초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정주영 회장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자신의 가족들을 잘 챙겨주고 전했다. 핏줄을 나눈 사이가 아닌데도 평생 가족처럼 대했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매년 1월1일 청운동 자택에 동생들과 ‘몽(夢)’자 돌림 자제들을 불러 덕담을 나눴는데, 여기에 유일한 외부인으로 쌀집 할머니 아들인 저자의 아버지를 초청했다고 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1950년 설립한 현대건설 초창기에 경리부장을 맡았다. 저자의 외삼촌은 현대건설의 태국 도로공사 현장에서 일했으며,동생은 현대정공에서 일했다고 한다.

“나도 현대그룹에 입사할 기회가 두 차례 있었다. 고려대를 졸업한 뒤 현대건설에 시험을 쳤고, 1970년대 대한일보 기자로 있을 때 대한일보가 폐간되면서 입사할 뻔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인연을 맺지 못했다. 대신 영양사인 아내가 현대시멘트에 다녔다. 그러니 때로는 현대가 마치 친족 회사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는 “우리 국민들이 인간 정주영 회장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정주영 회장이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를 아는 건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정주영 회장은 하늘이 대한민국에 내려 준 ‘복’이라고 본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정주영 정신, 정주영 노력, 정주영 근면함, 정주영 아이디어,정주영 철학을 알고 배우기 바란다”고 했다.

311쪽자리 ‘정주영이 누구예요’는 첫판 1500부를 찍었으며, 다음 주부터 시판에 들어간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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