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핑에선 이것을 ‘와이프아웃(wipeout)’이라 말한다. 이 단어는 원래 ‘완전히 지우다, 제거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wipe’는 ‘쓸다, 지우다’는 의미이며, ‘out’는 밖으로라는 뜻이다. 서핑에선 파도가 서퍼를 쓸어버리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한다.
본래 이 말은 1930~40년대 미국에서 속어로 전쟁·갱단·경찰 보고서에서 “적을 전멸시키다” 의미로 자주 사용했다. 일상 회화에서는 “완전 망했다”라는 뉘앙스로 쓰였다. 1950~60년대 서핑이 선을 보이면서 미국 서부와 하와이 서퍼들이 큰 파도에서 보드와 몸이 뒤엉켜 쓰러지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본 코너 1501회 ‘왜 ‘서핑’이라 말할까‘ 참조)
이 단어에는 단순한 ‘실패’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서퍼들 사이에서 ‘파도에 의해 완전히 쓸려나감’이라는 생생한 이미지로 변신했다. 서퍼들은 이를 부끄러운 순간이 아니라 바다와 맞붙은 용기의 증거로 여겼다.
와이프아웃은 서핑에서 피할 수 없는 의식이다. 파도는 늘 변덕스럽고, 인간은 그 흐름을 100% 통제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실패를 피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당당히 받아들이는 태도다. 머리 위로 포말이 쏟아지고, 몸이 회전하며, 순간 방향 감각이 사라진다. 그러나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대부분의 서퍼는 웃고 있다.
서핑에서 와이프아웃은 단순한 ‘넘어짐’이 아니라, 바다와의 교감이자 기술 향상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서퍼들은 와이프아웃 사진이나 영상을 서로 보여주며 서로를 격려한다. 파도에 휩쓸리는 모습마저 하나의 퍼포먼스로, 그 자체로 즐기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육지에서의 실패는 종종 명예를 잃게 하지만, 바다에서의 실패는 오히려 서퍼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끈다. 서핑이 가르치는 건 명확하다. 넘어지는 순간조차도 웃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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