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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1984년 그 뜨거웠던 주로를 기억하며… 한국 엘리트 마라톤의 부흥을 꿈꾼다

2026-05-17 07:26:32

 필자가 직접 선수로 뛰었던 1984년 제55회 동아마라톤 선두 그룹의 치열한 레이스 모습. [사진제공= 김원식]
필자가 직접 선수로 뛰었던 1984년 제55회 동아마라톤 선두 그룹의 치열한 레이스 모습. [사진제공= 김원식]
일반 대중에게 엘리트 마라톤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가 승리하는 단순한 경기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팬들이 “치열한 경쟁을 보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1984년 3월 18일, 제55회 동아마라톤의 선두 그룹 레이스는 그야말로 숨 막히는 전쟁터였다. 2시간 15분 벽을 깨기 위해 국내 우승 후보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밀어붙이던 그 시절의 주로는 뜨겁고 치열했다. 오직 순위와 기록을 향해 사력을 다하던 그때의 열정은 한국 마라톤 부흥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일부 대회에서는 우승 후보권 선수들이 서로 다른 대회에 분산 출전하거나, 선두권 레이스가 지나치게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장면이 반복돼왔다. 마지막 스퍼트 역시 기대만큼 치열하게 전개되지 않으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순위를 나눠 갖는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된다.
물론 모든 경기가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선수들은 끝까지 기록과 순위를 위해 사력을 다한다. 다만 일부 경기에서 선두 그룹이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한 채 큰 변화 없이 레이스를 마무리하는 모습은 대중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마라톤이 가진 극적인 승부의 긴장감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했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마라톤은 기록 경기이면서 동시에 집단 속에서 펼쳐지는 스포츠다. 페이스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전략 자체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전략이 경쟁 자체를 지나치게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굳어질 때다. 마지막 결승선에서 여유 있게 세리머니를 펼치거나, 단 1초를 줄이기 위한 집요한 승부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 현실은 팬들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실제로 일부 대회에서는 경기 후반까지 순위 변화나 공격적인 승부 없이 레이스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모습이 이어졌다. 치열한 우승 경쟁보다는 일정한 간격 속에서 레이스가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마무리되면서 관중의 몰입감 역시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라톤은 체력 안배와 기록 관리가 중요한 종목이며, 팀 전략에 따른 운영 역시 자연스러운 경기의 요소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고착돼 반복된다면 긴장감은 더욱 떨어지고, 결과에 대한 신뢰도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마라톤계가 당면한 여러 현실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우승과 준우승 간의 상금 격차가 지나치게 큰 보상 방식, 실업팀 중심의 출전 환경, 그리고 도전보다 안정적인 입상을 우선시하는 타성이 선수들의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의 거침없던 도전 정신보다 현실적인 안정을 택하게 만드는 마라톤계의 안일한 분위기 탓이다.

그러나 스포츠의 신뢰는 결국 과정에서 나온다. 팬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단순히 “누가 이겼는가”가 아니다. 왜 그 선수가 이겼는지, 어떤 경쟁 끝에 결과가 만들어졌는지를 납득할 수 있느냐다.
스포츠가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승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경쟁, 그 과정이 감동을 만든다. 반대로 의심이 남는 순간 감동은 급격히 줄어든다.

필자가 오래된 사진 속 뜨거운 질주의 한복판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마라톤이 과거의 그 찬란했던 부흥기를 다시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엘리트 마라톤이 대중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끝까지 서로를 밀어붙이는 경쟁, 결과 이전에 과정으로 설득하는 경기 문화다. 팬들이 보고 싶은 것은 계산된 완주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진짜 레이스다.

[김원식 마라톤 해설가·전남 장성중 교사]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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