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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796] 벨기에는 어떻게 '당구 강국'이 됐을까

2026-05-27 06:47:53

UMB 3쿠션 월드컵 정상에 오른 밸기에 당구 전설 쿠드롱. [연합뉴스]
UMB 3쿠션 월드컵 정상에 오른 밸기에 당구 전설 쿠드롱. [연합뉴스]
유럽 지도를 펼쳐보면 벨기에는 그렇게 큰 나라가 아니다. 프랑스, 네덜란드 사이에 끼어 있는 조그만 국가로 인구가 1천1백만 정도 밖에 안된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3국이 인접해 세 국가 머리글자(Be, Ne, Lux)를 따서 ‘베네룩스 3국’에 속한 벨기에는 세계 스포츠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갖지 못한다. 축구에서는 강팀이기는 하지만 브라질이나 독일 같은 강국은 아니다. 하지만 유독 한 종목에서는 오랫동안 절대 강국으로 불려왔다. 바로 3쿠션 당구다. 마치 한국이 양궁과 쇼트트랙에서 세계적인 강국으로 군림하는 것처럼 말이다.

벨기에를 당구 강국으로 이끈 세계적인 선수로는 레이몽 쿨레망, 프레데리크 쿠드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쿠드롱은 사실상 현대 3쿠션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월드컵 우승 다수, 세계선수권 우승, 엄청난 평균 애버리지 등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벨기에가 당구 강국 이미지를 굳히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특히 한국 프로당구 팬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그렇다면 벨기에는 어떻게 당구 강국이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스포츠 강국의 조건으로 인구, 자본, 스타 플레이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벨기에 당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답이 나온다.
핵심은 ‘생활 문화’다. 벨기에를 비롯한 서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당구가 사교 문화의 일부였다. 특히 포켓볼이 아니라 캐롬 당구 문화가 강했다. 지역 술집과 클럽에는 자연스럽게 당구대가 있었고, 사람들은 퇴근 후 맥주를 마시며 게임을 즐겼다. 중요한 건 이것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의 일부였다는 점이다. 작은 도시에도 클럽 리그가 있었고, 동호회와 토너먼트가 꾸준히 운영됐다.

이런 환경에서는 당구가 ‘특별한 선수만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일상 속 기술로 축적된다. 자연히 선수층도 두터워진다. 한국처럼 당구장이 급격히 늘어난 시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천천히 문화로 뿌리내린 셈이다.

벨기에가 특히 강했던 분야는 3쿠션이었다. 3쿠션은 단순한 힘이나 감각만으로 되는 종목이 아니다. 회전, 각도, 테이블 컨디션, 다음 수까지 계산해야 하는 고도의 전략 스포츠다. 그래서 오래 축적된 클럽 문화가 큰 힘을 발휘한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상대와 수많은 경기를 경험한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높은 수준의 수읽기를 체득하게 된다. (본 코너 1776회 ‘당구에서 왜 ‘쓰리쿠션(three cushion)’이라 말할까‘ 참조)

여기에 전설적인 선수들의 존재가 국가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레이몽 쿨레망은 현대 3쿠션 초창기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고, 이후 등장한 쿠드롱은 아예 스포츠의 기준 자체를 바꿔버렸다. 압도적인 애버리지와 정교한 경기 운영은 ‘벨기에 스타일’이라는 표현까지 만들었다. 세계 선수들이 벨기에 선수들의 경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정도였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벨기에 내부에서 당구가 축구만큼 거대한 국민 스포츠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처럼 방송 중계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강한 이유는, 생활 스포츠 기반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인기보다 중요한 건 꾸준한 클럽 시스템과 세대 계승이었다.
어떤 스포츠는 스타 한 명이 등장하며 잠깐 강해진다. 하지만 진짜 강국은 문화가 만든다. 벨기에 당구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작은 나라가 오랫동안 세계 최정상에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특별한 비밀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일상 속에서 축적된 스포츠 문화에 있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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