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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23] 바둑에서 왜 ‘악수(惡手)’라고 할까

2026-06-24 04:30:02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23]  바둑에서 왜 ‘악수(惡手)’라고 할까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이 있다. "오래 생각한 끝에 도리어 나쁜 수를 둔다"는 뜻이다. 이 말은 원래는 바둑에서 나온 표현으로 보이며, 오늘날에는 "지나친 고민이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여기서 말하는 악수는 '손을 맞잡는 ‘악수(握手)'가 아니라 '나쁜 수'를 뜻하는 악수(惡手)다. 한자어로 ’나쁘다‘는 의미인 ’악(惡)‘과 바둑에서 한 번 돌을 놓는 행위인 ’착점(着點)‘을 의미하는 ’수(手)‘의 합성어로 '형세를 해치는 착점'이라는 의미다. 이 표현은 중국·일본·한국의 전통 바둑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돼 왔으며, 오늘날에는 바둑판을 넘어 정치·경제·일상의 잘못된 선택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으로까지 확장됐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서 악수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다. 이는 악수라는 말이 조선시대부터 널리 쓰인 바둑 전문용어가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악수를 비롯해 ‘승부수(勝負手)’, ‘자충수(自充手)’, 같은 용어들 가운데 상당수는 근대 이후 한자 문화권에서 정리·보급된 용어일 가능성이 높다. (본 코너 1819회 ‘바둑에서 왜 ‘승부수’라 말할까‘, 1820회 ’바둑에서 왜 ‘자충수(自充手)’라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악수라는 말을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4년 6월3일자 ‘저포회사유망(苧布會社有望)’ 기사는 ‘충남홍산저포주식회사(忠南鴻山苧布株式會社)는대정육연도(大正六年度)에부여군유지김종흡외제씨(扶餘郡有志金鍾翕外諸氏)의발기(發起)로현대경제계(現代經濟界)에출몰(出沒)하는간상배(奸商輩)의악수(惡手)를방어(防禦)하고당지특산(當地特產)의저포판로(苧布販路)를확장(擴張)코자만흔혈헌(頁獻)이잇섯스며현금경제계(現今經濟界)에는일대규모(一大規模)의회사(會社)가되얏다더라(서천(舒川))’라고 전했다. 이 기사는 적어도 1924년에는 악수(惡手)가 이미 일반 한자어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바둑판에서의 착수(着手)만이 아니라, 넓게는 ‘좋지 않은 방법’, ‘나쁜 계책’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악수의 반대되는 말은 ‘호수(好手)’ 또는 ‘묘수(妙手)’이다. 반대로 좋은 계획이라는 의미이다. (본 코너 1821회 ‘왜 바둑에서 ‘묘수(妙手)’라고 말할까‘ 참조) 바둑에서 악수는 반드시 실수와 같은 의미는 아니다. 실수는 단순히 잘못 둔 경우를 가리키지만, 악수는 그 결과가 명확하게 자신의 형세를 해치거나 상대에게 이익을 주는 수를 의미한다. 즉, 단순한 착오를 넘어 바둑의 흐름 자체를 나쁘게 만드는 선택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러한 표현은 동아시아의 전통 바둑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중국과 한국, 일본의 바둑 용어에는 수를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가치 판단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좋은 수는 ‘호수’, 훌륭한 수는 ‘묘수’, 승부를 결정짓는 수는 ‘결정타’에 해당하는 ‘급소’ 등으로 표현한다. 악수 역시 그런 맥락에서 탄생한 용어다. 수 자체에 선악의 개념을 부여한 것이다.

또한 악수라는 말에는 교훈적인 의미도 숨어 있다. 바둑은 한 수 한 수가 쌓여 전체 국면을 만든다. 당장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착점도 시간이 지나면 형세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바둑 고수들은 “악수는 한 번 두면 끝나지만, 그 대가는 끝까지 따라온다”고 말한다. 악수라는 표현이 단순한 실수보다 더 무겁게 들리는 이유다.

오늘날 ‘악수’는 바둑판을 넘어 일상 언어로도 널리 쓰인다. 정치, 경제, 스포츠는 물론 개인의 선택에 대해서도 “그 결정은 악수였다”라고 말한다. 이는 바둑이 우리 문화 속에서 얼마나 깊게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원래는 바둑 용어였지만, 이제는 잘못된 선택이나 불리한 판단을 뜻하는 일반 명사로 확장된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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