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운드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첫 번째 티샷보다 두 번째 샷에서 더 많은 사고가 일어난다. 드라이버는 제법 잘 맞았는데 공은 러프 끝자락에 살짝 걸려 있다. 거리도 애매하다. “5번 아이언으로 붙일까, 아니면 6번으로 끊을까?”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람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분다. 그린 앞 벙커가 눈에 밟힌다. “벙커 앞은 싫고, 그렇다고 짧으면 오르막 어프로치?” 그때 누군가 조언한다. “형, 그냥 감으로 치세요.” 감으로? 이성적 계산의 골퍼에게 그 말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고민 끝에 쳤지만 결과는 벙커 안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왜 그 생각을 했을까”라는 자책이 울려 퍼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장면은 거의 모든 골퍼의 라운드에서 반복된다. 두 번째 샷 앞에서는 누구나 ‘생각의 함정’에 빠진다.
○ 전전두엽이 과열되는 순간
○ 두 번째 샷의 인지 전쟁
첫 번째 티샷은 티를 꽂고, 심호흡 한 번, 백스윙, 임팩트, 팔로스로우까지 루틴이 확실하다. 모든 것이 익숙한 절차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두 번째 샷은 다르다. 그때부터는 계산, 전략, 심리,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거리, 바람, 잔디 결, 라이, 경사, 해저드 등 변수가 폭발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라고 부른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인간의 판단은 정교하지 않고 오히려 감정적이 된다. 전전두엽의 억제력이 떨어지면 충동을 제어하지 못한다. “이번엔 한 번에 붙이자!” 이 욕심이 뇌 속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하며 ‘위험한 자신감’을 만든다. 그 결과는 대개 벙커나 해저드라는 이름의 현실로 돌아온다.
○ ‘과유불급’ —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공자의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말로 “過猶不及(과유불급)” —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 생각을 비울 때 뇌는 더 똑똑해진다
신경 영상 연구에 따르면 숙련된 골퍼일수록 스윙 직전 전전두엽의 활동이 오히려 감소한다. 즉, 그들은 생각을 멈춘 것이 아니라 필요한 생각만 남긴 것이다. 전전두엽이 잠시 쉬어갈 때 감각과 운동의 회로가 다시 이어진다. 그때 세로토닌이 감정의 리듬을 안정시키고 균형 잡힌 마음이 스윙의 리듬을 되살린다. 우리가 흔히 “기분이 좋아서 샷이 잘 됐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뇌가 안정돼 있어서 기분이 좋은 것이다. 골프에서 행복감이란 잘 맞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 잘 맞을 준비가 된 뇌가 선물하는 감정이다.
○ 완벽보다 여유를, 계산보다 감각을
골프의 아이러니는 완벽하려는 순간부터 불안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모든 걸 통제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스윙의 자연스러움을 앗아간다. 첫 번째 샷은 용기, 두 번째 샷은 지혜, 세 번째 샷은 포용이다. 라운드는 실수를 줄이는 여행이지, 완벽을 증명하는 여정이 아니다. 모든 샷을 잘 치려 하기보다 한 번의 결정에 믿음을 두는 것이 더 현명하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지나친 고민이야말로 진짜 실수의 씨앗이다. 바람이 변하고 마음이 흔들려도 결국 골프는 ‘균형의 예술’이다.
○ 뇌의 속삭임
때로 전전두엽이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조금 덜 생각해라. 공은 네가 아니라, 네 뇌가 이미 알고 있다.” 두 번째 샷의 진정한 용기란 결단 이후의 침묵 속에서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 공은 예상보다 곧고, 더 멀리, 더 부드럽게 날아간다. 생각이 많을수록 공은 더 멀어진다. 골프는 머리로 치는 게임이 아니라, 생각을 비우는 연습이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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