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선 ‘축구’를 ‘발공차기’라고 부른다. 북한은 ‘축구’라는 말이 일제식민지 잔재로 보고 순 우리말인 ‘발공차기’로 바꿨다. 1950~60년대 북한은 외래어나 일본식 표현을 없애고 순우리말을 살리는 ‘문화어 정비 운동’을 추진했다. ‘축구’는 ‘발공차기’, ‘농구’는 ‘고리공던지기’, ‘배구’는 ‘공넘기기’로 바뀌었다. ‘핸드볼’은 ‘손공던지기’, ‘스키’는 ‘눈미끄럼타기’로 고쳐 쓰였다. 말 속에 담긴 외래의 흔적을 지우고, 인민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생활언어로 바꾼 것이다.
북한 ‘조선말규범집’(1966)에서는 “남의 말(일본식, 영어식)을 본떠 쓴 말을 없애고 조선식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명시했다.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등은 모두 외래식이라 지적했다.
북한 공식 언론 ‘로동신문’은 1972년 8월3일자에서 “우리는 발공차기, 공넘기기, 손공던지기와 같은 조선식 체육말을 널리 써야 한다. 이것은 인민적 체육문화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사업이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축구’ 대신 ‘발공차기’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북한에서 쓰는 스포츠 용어에는 언어를 통한 사상적 자주, 즉 ‘주체적 체육문화’의 의식이 깔려 있다. 이러한 언어정책은 단순한 국어정비 차원을 넘어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북한은 체육을 “사상과 정신의 전선”으로 본다. 체육에서의 자립, 언어에서의 자립은 곧 사상의 자립과 연결된다. (본 코너 1581회 ‘북한은 문화어에서 스포츠 용어를 어떻게 바꾸었나’, 1582회 ‘남북한 스포츠 보도, 어떻게 다를까’ 참조)
언어는 생각의 그릇이다. 한 사회가 어떤 말을 쓰느냐는 곧 그 사회가 무엇을 중시하느냐를 보여준다. 남과 북이 같은 경기를 두고 다른 이름을 쓰는 것은, 그만큼 서로 다른 언어관과 역사인식을 반영한다. ‘발공차기’는 북한식 주체체육의 언어적 표상이며, 동시에 남북한 언어의 분기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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