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일반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586] 북한에선 ‘주장(主將)’을 왜 ‘기둥선수’라고 말할까

2025-10-26 07:22:18

올해 북한 축구 U-17 국가대표팀 주장 김유진 [AFC 제공]
올해 북한 축구 U-17 국가대표팀 주장 김유진 [AFC 제공]
스포츠에서 팀을 이끄는 사람을 ‘주장’이라 부른다. 원래 이 말은 군사 용어다. ‘주장(主將)’은 한자어로 ‘주인 주(主)’, ‘장수 장(將)’을 써서 ‘주요한 장수’, 곧 군대의 최고 지휘관을 뜻했다. 중국 고대 병서인 ‘손자병법’이나 ‘사기’에서도 “주장이 법도를 잃으면 삼군이 어지럽다”고 할 만큼, 이는 위계와 명령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장이라는 말을 쓴 지는 매우 오래됐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면 국역 784회, 원문 886회 등 총 1,669회 등장한다. 대부분 군사적 용어로 많이 사용했다.

근대에 들어 일본이 서양식 스포츠를 도입하며 영어 ‘캡틴(captain)’을 번역한 용어가 바로 ‘主將(しゅしょう)’이었다. 식민지 시기 조선은 일본의 체육 제도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주장’이라는 말도 한국 스포츠 언어 속에 뿌리내렸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2년 12월6일자 ‘동서양군(東西兩軍)의전투(戰鬪) 조선운동계(朝鮮運動界)에셔선통포고(宣統布告)’ 기사는 ‘지나간 여름에 세게선수권쟁탈젼에 참가하야 최후까지맹렬한 싸홈을하엿든 미국「늬유욕」의 거인군(거인군(巨人軍))과 또한『양키」군 가온대에셔 데일노 강한이 만으로 조직하여가지고 현재까지 일본에셔 널니 일본군과싸오든 미국직업야구단(미국직업야구단(米國職業野球團))이 명칠일 오젼에 남대문착 렬차로쎠 입경하야 그날 오우에 젼조선군과 싸오리라함은 작일에도 보도하얏거니와 그직업단으로 말하면 우리조선운동게에셔 가히보지 못말 묘긔를 가젓스며 또한 우리젼조선군을 대표하야 대응할 각선수들도 일즉이 일본까지가셔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케하든 로장들이오 또한 현재 조선운동게에셔 가장 일홈이 놉흔 각디방의대표이라는데 이와갓치 우리조선에셔 국졔뎍일대 긔록을 주게된 이싸옴에 만이 나와셔 힘을 우리의 긔능을 싸우는 선수와 갓치 밤휘하기를 바란다하며 그날싸을 각군의 진용은아래와갓다더라

미국직업야구단측선수(米國職業野球團側選手) 주장(主將)「헌트」(쎄ㄴ트루이 쓰카듸낼)뿌쉬(늬유욕양키군(軍))호잇트(늬유욕양키군(軍))페ㄴ크(뽀스튼적답군(赤踏軍))홉프맨(늬유욕양키군(軍))수에르(클리보랜드군(軍))케리(늬유욕거인군(巨人軍))스틔분손(클리브랠군(軍)) 라배니(쎄ㄴ트루이쓰카듸낼)폭크—(시아고백답군(市俄古白踏軍))스틔ㅇ게ㄹ(늬유욕거인군(巨人軍))뮤셰르(늬유욕거인군(巨人軍))아그리퓌드(뿌르클린군(軍))스추렁크(시아고백답군(市俄古白踏軍)) 전조선군측선수(全朝鮮軍側選手)주장(主將) 이원곡(李源谷)박석윤(朴錫胤)(중앙체육단주장(中央體育團主將))김태술(金泰述)(대구(大邱))박천병(朴天秉)(중앙단(中央團))이태훈(李泰薰)(중앙단(中央團))이석찬(李錫賛)(평양(平壤))안익록(安益祿)(휘문(徽文))김종세(金鍾世)(휘문(徽文))마춘식(馬春植)(배재단주장(培材團主將))함용화(咸龍華)(배재(培材))후보자손희운(後補者孫熙運)(중앙단(中央團))장의식박안득김성환(張儀植朴安得金星煥)(배재(培材))’라고 전했다. 이 기사는 미국 메이저리그 선발팀이 방한해 우리나라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에서는 ‘주장’ 대신 ‘기둥선수’라는 말을 쓴다. 1960년대 중반 ‘문화어 정리사업’ 과정에서 북한은 ‘주(主)’, ‘장(將)’ 같은 위계적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바꾸었다. ‘심판→재판원’, ‘코치→지도원’, ‘주장→기둥선수’가 그 예다. (본 코너 1581회 ‘북한은 문화어에서 스포츠 용어를 어떻게 바꾸었나’, 1583회 ‘북한에선 ‘감독’을 왜 ‘지도원’이라 말할까‘, 1584회 ’북한에선 왜 ‘심판’을 ‘재판원’이라 말할까‘ 참조)

‘기둥선수’는 ‘기둥’과 ‘선수’의 합성어이다. 기둥은 집을 받치는 중심, 즉 버팀목을 의미한다. 명령하는 리더가 아니라, 집단을 떠받치는 존재로서의 상징이다. 일본식 한저어인 선수(選手)’가릴 선()’손 수()’자가 합친 말이다. ‘선수 영어 '플레이어(player)' 또는 '애슬리트(athlete)'를 옮긴 말이다. 영어적인 의미로는 노는 사람’, 또는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선수라는 말은 일제시대에 들어왔다. 그 이전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면 선수라는 말이 딱 1번 나온다. 순종 16(1923) 521, “옥돌장(玉突場)에 나아가 당구 선수(撞毬選手) 모리자키 쿠라지로森崎庫次郞등의 당구(撞毬)를 관람하였다. 그리고 술과 안주 비용으로 일금 55()과 물품을 차등 있게 내려주었다며 순종이 당구 경기를 직접 관람했다는 내용이다. 일제시대 순종 때 등장했던 것이다. (본 코너 14‘‘선수(選手)’손 수()’자가 들어간 까닭은참조)
북한의 체육 담론은 개인의 명성보다 집단의 단합을 강조한다. “우리 기둥선수는 동무들을 믿고 격려하며, 자기보다 집단을 먼저 생각한다”는 식의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준다. 남한의 ‘주장’은 책임과 권위, 북한의 ‘기둥선수’는 헌신과 집단 정신을 상징한다. 한쪽은 명령의 중심이고, 다른 한쪽은 버팀의 중심이다. 두 체제의 언어가 갈라진 곳에서 우리는 단어 하나에도 체제의 가치관이 녹아 있음을 본다. ‘주장’이 지휘의 언어라면, ‘기둥선수’는 단결의 언어다. 결국 언어는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리스트바로가기

많이 본 뉴스

골프

야구

축구

스포츠종합

엔터테인먼트

문화라이프

마니아TV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