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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의 골프이야기] 겨울 라운드의 참맛, 뇌가 깨어나는 차가운 각성의 미학 – 세한송백(歲寒松柏)

2025-12-03 11:47:52

김효주(왼쪽)와 최혜진. 사진=연합뉴스
김효주(왼쪽)와 최혜진. 사진=연합뉴스
△12월, 골퍼의 진심이 드러나는 계절

달력의 마지막 장인 12월이 시작되었다. 페어웨이의 잔디는 황금색으로 물들었고 아침 공기에는 쨍한 냉기가 서려 있다. 많은 골퍼들이 "이제 시즌은 끝났다."며 골프백을 베란다 깊숙이 넣어두는 시기다. 추위, 딱딱한 땅, 두꺼운 옷 등 골프를 즐기기에는 방해꾼이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진정한 골퍼에게 12월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북적이던 골프장이 고요해지고 화려한 풍경이 걷힌 자리에 골프의 본질만 남는 시간이다. 남들은 "돈 내고 고생하러 간다"고 혀를 차지만 겨울 골프에는 따뜻한 계절에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강렬한 '뇌의 각성'과 '성취의 카타르시스'가 숨어 있다.
오늘 이야기는 춥다고 웅크린 당신의 뇌를 깨우기 위한 겨울 골프 예찬론이다.

△ 찬 바람은 뇌를 깨우는 가장 강력한 '스위치'

겨울 골프의 첫 번째 매력은 '선명함'이다. 따뜻한 봄날이나 무더운 여름, 선선한 가을에 우리의 뇌는 이완되거나 지쳐서 멍한 상태(DMN 과활성화)가 되기 쉽다. 하지만 영하의 티박스에 서서 차가운 칼바람을 마주하는 순간, 뇌는 즉각적인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신경심리학적으로 이때 뇌간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은 인간의 생존 본능과 직결된 것으로 주의력을 극대화하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겨울 골프를 나갔을 때 춥다는 느낌과 동시에 머릿속이 맑아지고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기분 탓이 아니다. 뇌가 생존을 위해 불필요한 잡념 회로를 차단하고 오직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도록 시스템을 전환했기 때문이다. 흐리멍덩하던 정신이 번쩍 들고 샷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서는 이 강렬한 '각성' 상태가 바로 겨울 골프가 주는 첫 번째 참맛이다.

△ 고통 뒤에 오는 쾌락의 증폭 - 대항과정 이론

"그 추운 데서 떨다가 들어와서 먹는 어묵 국물 맛 때문에 겨울 골프를 못 끊지." 많은 골퍼가 공감하는 말이다. 그런데 왜 똑같은 어묵 국물인데 따뜻한 봄날보다 겨울에 더 맛있게 느껴질까? 여기에는 심리학의 '대항과정 이론'이 숨어 있다. 인간의 뇌는 극도의 스트레스나 고통(추위)을 겪고 나면 그 반작용으로 평소보다 훨씬 큰 쾌락과 안도감을 선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라운드 내내 추위와 싸우며 긴장했던 몸이 그늘집이나 사우나의 따뜻한 온기를 만나는 순간, 뇌에서는 천연 진통제인 '엔도르핀'과 보상 물질인 '도파민'이 폭죽처럼 터져 나온다. 즉, 겨울 골프의 쾌감은 '고생 끝에 오는 낙'이다. 단순히 따뜻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혹독한 환경을 내가 이겨냈다'는 뇌의 성취감이 쾌락의 강도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겨울 라운드는 이처럼 고통과 쾌락의 극적인 대비를 즐기는 고도의 심리 게임이다.
△ 시각적 미니멀리즘, 뇌의 휴식

봄, 여름, 가을의 골프장은 아름답다. 형형색색의 꽃, 푸른 잔디, 울창한 나무, 단풍은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뇌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뇌의 시각 피질이 처리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은 '과부하' 상태일 수도 있다. 반면 겨울의 골프장은 단순하다. 누런 잔디, 앙상한 나뭇가지, 하얀 눈, 그리고 파란 하늘. 색채가 빠진 겨울 골프장은 '시각적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불필요한 시각 정보가 사라진 필드에서 골퍼는 오직 하얀 공 하나, 그리고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하게 된다. 화려함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나'와 '코스'만 남는 것이다. 복잡한 세상사로 어지러운 현대인의 뇌에게 겨울 골프장의 황량함은 오히려 깊은 묵상과 인지적 휴식을 제공한다.

△ 세한송백(歲寒松柏) - 얼어붙은 땅에서 실력을 검증하다.

추사 김정희는 명작 <세한도>를 통해 세한송백(歲寒松柏)의 정신을 말했다.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 따뜻한 시절에는 모든 나무가 푸르러 보이지만 혹독한 겨울이 닥쳐야만 진짜 푸른 나무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잔디가 푹신하고 날씨가 좋을 때는 누구나 굿샷을 날릴 수 있다. 하지만 겨울은 다르다. 땅은 얼어 있어 정확한 임팩트가 아니면 손이 울리고 잘 친 샷도 불규칙한 바운스로 엉뚱한 곳으로 튀어 나간다. 그린은 유리알처럼 빨라 공을 세우기가 힘들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골퍼의 진짜 실력과 품격이 드러난다. 불운한 바운스에 화를 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평정심, 겹겹이 껴입은 옷의 불편함을 이겨내는 유연성, 그리고 추위에 떠는 동반자를 위해 핫팩 하나를 건네는 배려심이 필요하다. 겨울 골프는 스코어를 줄이러 가는 곳이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 앞에서 겸손을 배우고 내 골프 멘탈이 세한송백처럼 여전히 푸른지를 확인하러 가는 수행의 장이다.

△ 겨울 골프를 위한 뇌과학적 팁

그렇다면 이 겨울 라운드의 참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첫째 뇌를 속이는 체온 유지가 필요하다. 뇌는 목과 머리의 온도가 떨어지면 급격한 위기 신호를 보내 몸을 굳게 만든다. 넥워머와 귀마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뇌가 "따뜻하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야 부드러운 스윙이 나온다.

둘째 욕심을 버리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얼어붙은 땅에서 '완벽한 컨택'을 노리는 도파민적 욕망은 버려야 한다. 한 클럽 길게 잡고 부드럽게 쓸어치는 '세로토닌적 스윙'이 겨울 골프의 정석이다.

셋째 긍정적 프레이밍이다. "추워서 망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뇌는 정말 기능을 멈춘다. "이 찬 공기가 내 머리를 맑게 한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라. 뇌는 믿는 대로 반응한다.

△ 이불 밖으로 나와라, 뇌가 기다린다

많은 이들이 겨울을 골프의 비수기라 부른다. 하지만 뇌과학의 시선으로 본 겨울은 뇌를 단련하고, 감각을 깨우며, 쾌락의 역치를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성수기다. 혹한의 예보가 있더라도 두려워 말자. 웅크린 몸을 일으켜 필드로 나가는 순간, 당신의 뇌는 그 차가운 바람 속에서 가장 뜨겁게 깨어날 것이다. 지금 골프백을 챙겨라. 진정한 골프의 맛은 영하의 필드 위에도 숨겨져 있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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