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발 손주영이 팔꿈치 통증으로 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내려가는 순간 8강 진출이 걸린 경기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불펜에서 스스로 손을 든 선수가 있었다. 대표팀 최고령 투수 노경은(42)이었다.
13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선 베테랑은 흔들림이 없었다.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위기를 봉합했고 3타자 연속 헛스윙 삼진이라는 장면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각인시켰다.
돌아보면 이 자리는 예고된 반전의 결과였다. 2021시즌을 마친 롯데 자이언츠는 노경은에게 방출을 통보했다. 이닝 제한과 나이를 근거로 내린 결정이었다. 사실상 커리어 종료 선고였다. 그러나 SSG 랜더스는 달랐다. 풍부한 경험과 여전히 살아있는 구위를 믿고 1년 4억 원이라는 조건으로 그를 불러들였다.
그 선택의 무게는 이후 수치로 돌아왔다. SSG 이적 첫 시즌 팀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 힘을 보탰고 2024년과 2025년에는 2년 연속 최고령 홀드왕이라는 KBO 역사에 새 이름을 새겼다.
롯데가 '소진된 자원'으로 판단한 시점이 오히려 그의 제2전성기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류지현 감독은 "노경은은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단순한 덕담이 아니다. 팀이 가장 위태로울 때 자청해 올라오고 100구 이상의 불펜 피칭도 마다하지 않는 헌신은 젊은 투수들이 배울 수 없는 경지에서 나온다.

이제 무대는 마이애미다. 단판 토너먼트의 냉혹한 구조 속에서 위기 상황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베테랑의 존재는 전력 분석표에 담기지 않는 무형의 자산이다.
'왜 뽑혔는지 증명하겠다'던 그의 말은 이미 현실이 됐다. 남은 것은 마이애미의 마지막 불꽃이다.
[진병두 마니아타임즈 기자/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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