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하루가 지난 지금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이겼는데, 왜 뇌는 편하지 않은 걸까.
뇌과학적으로 이 불편함은 지극히 정상이다. 우리 뇌에는 '위협 탐지 시스템'이 있다. 판단의 사령탑인 전전두엽이 아무리 "5-0이었잖아"라고 다독여도, 감정의 경보기인 편도체는 맥락을 읽는다.
상대는 FIFA 랭킹 102위, 월드컵 본선에도 오르지 못한 팀이었다. 편도체는 그 사실을 안다. 12일 뒤에 맞붙을 체코는 다르다. 그 다음엔 홈팬 6만 명을 등에 업은 멕시코가 기다린다. 전전두엽이 '오늘은 쉬어도 돼'라고 신호를 보내도, 편도체는 경보를 끄지 않는다. 뇌의 경보기는 승리의 크기가 아니라 '진짜 위협까지 남은 거리'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지대가 한 겹을 더 얹는다. 이번 경기가 열린 BYU 사우스필드는 해발 1,460m다. 홍명보 감독이 이 장소를 훈련 베이스캠프로 고른 건 우연이 아니다. 6월 12일 체코전과 19일 멕시코전이 열리는 과달라하라가 해발 1,571m이기 때문이다. 고지대의 공기는 얇다. 산소 밀도가 낮아지면 뇌도 영향을 받는다.

경기 중엔 반갑지 않은 장면도 있었다. 조유민이 의무진에 업혀 나왔고, 배준호도 부축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뇌의 경보기가 5골 뒤에도 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우리는 점수판을 보는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빠져나간 것들'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나는 말이 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미리 준비하면 근심이 없다'는 이 사자성어는 《서경(書經)》의 한 구절에서 왔다. 전쟁이 끝난 뒤 긴장을 풀지 말라는 경계의 말이었다. 승리한 날에 더 단단하게 빗장을 걸라는 뜻이다.
어제 태극전사들이 프로보 사우스필드에서 몸으로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5-0의 흥분은 어제로 족하다. 뇌는 이미 12일 후 과달라하라를 향해 시계를 맞추고 있다.
손흥민의 55·56호 골이 차범근(58골)의 대기록까지 2골 차로 좁혔다. 그 숫자를 떠올리며 드는 질문 하나. 당신의 뇌는 지금 어제의 5-0을 즐기고 있는가, 아니면 벌써 6월 12일 오전 11시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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