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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26] 왜 바둑에서는 '복기(復棋)'라고 말할까

2026-06-27 06:15:16

 '바둑 황제' 조훈현(왼쪽)이 바둑 천재소녀와 대국를 하는 모습
'바둑 황제' 조훈현(왼쪽)이 바둑 천재소녀와 대국를 하는 모습
"감독은 경기 영상을 보며 선수들과 복기 시간을 가졌다." "실점 장면을 복기해 수비 조직의 문제를 분석했다.“

스포츠 기사에서 이런 문장들을 만나면 ‘복기(復棋)’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복기는 단순히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따라가며 판단과 선택을 분석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래서 ‘기억한다’나 ‘회상한다’보다 훨씬 분석적이고 성찰적인 뉘앙스를 갖는다.

'복기'는 한자로 '다시 복(復)', '바둑 기(棋)'를 쓴다. 말 그대로 '바둑을 다시 둔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오래전부터 동아시아 바둑 문화권에서 사용됐다. 특히 중국에서는 ‘復盤(푸판, fùpán)’이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이었다. 여기서 ‘盤(반)’은 바둑판을 뜻하므로 '판을 다시 재현한다'는 의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복기가 정착했고, 일본에서는 ‘検討(けんとう, 켄토)’나 ‘並べ直し(나라베나오시, 다시 늘어놓기)’ 같은 표현을 함께 사용해 왔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복기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으로는 근대 한국 바둑계에서 정착한 용어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우리나라 언론은 1960년대부터 복기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63년 5월25일자 ‘귀염둥이재줏군 ⑪ 열살에 당당한 2단’ 기사에서 조훈현 군을 소개하면서 ‘바둑을 두기 시작하면 “밥먹는것조차 잊어버린다”는「조」군은 5세때부터 바둑을 두었다.심심풀이로 바둑을 두기시작한 아버지 (조규상씨·53) 곁에서 바둑두기 구경을하던 조군은 어느새 바둑두는법을 깨쳐버렸다.깜짝 놀란 아버지는다섯살난「조」군에게 복기(복기(復棋)=바둑들을 놓았다가 싹 치워 버리고 다시 그 순서대로똑같이 놓는것,이것은 유단자가 되어야 할수있다.)를 시켰더니 서슴없이 해냈다’고 적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기사에서 굳이 괄호를 열어 ‘복기(復棋)=바둑돌을 놓았다가 싹 치워 버리고 다시 그 순서대로 똑같이 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는 점이다. 당시 소개된 대상이 열 살의 조훈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바둑계에서는 이미 복기가 중요한 훈련법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기사는 '1963년 이전부터 사용됐다'는 사실은 보여주지만, '복기라는 말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까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복기라는 말이 이제 바둑을 넘어 일상에서도 널리 쓰인다는 사실이다. 스포츠 선수들은 경기를 복기하고, 투자자는 매매를 복기하며, 직장인들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복기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시험을 치른 학생들도 문제를 복기한다고 표현한다. 이는 복기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경험을 성장의 자산으로 바꾸는 행위를 의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 전체를 다시 살아보는 것이다.

바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승자는 기쁘고, 패자는 배운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복기를 하는 사람만이 배운다. 이긴 대국도 복기하지 않으면 우연한 승리에 머물 수 있고, 진 대국도 제대로 복기하면 다음 승리의 밑거름이 된다. 결국 복기란 과거를 다시 사는 일이 아니다. 미래를 더 잘 두기 위해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새롭게 읽는 일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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