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생'이라는 표현은 바둑의 사활(死活) 이론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용어로, 고전 바둑 문헌에서도 오래전부터 사용했다. 한자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인 ‘아닐 미(未)’와 살이있다는 의미인 ‘ 날 생(生)’의 합성어이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면 미생(未生)이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여기서의 미생은 바둑 용어가 아니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음' 또는 '아직 성숙하지 않음'을 뜻하는 일반 한자어로 쓰였다. 미생이라는 말 자체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바둑에서는 이 말을 '아직 삶이 확정되지 않은 돌'이라는 의미로 전문화해 사용한 것이다.
바둑에서 돌이 완전히 살아 있으려면 상대가 아무리 공격해도 결국은 잡히지 않는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반대로 죽은 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운명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실제 대국에서는 이 둘 사이에 놓인 돌들이 훨씬 많다. 당장은 위험해 보이지만 적절한 수를 찾으면 살아날 수도 있고, 반대로 실수 한 번으로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상태를 미생이라고 부른다.
바둑에서는 미생과 ‘완생(完生)’을 구분한다. 완생은 생존이 확정된 상태이고, 미생은 그 직전의 불안정한 단계다. 이 표현에는 바둑이라는 게임의 철학도 담겨 있다. 바둑은 모든 것을 흑백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승패조차 마지막 계가를 하기 전까지는 확정되지 않으며, 하나의 돌 역시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 사이의 긴 시간을 거친다. 미생이라는 말은 그 중간 과정을 인정하는 언어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에 더 신중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하며, 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미생은 바둑판 밖으로도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사회 초년생,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사람,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 가는 사람을 두고 미생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실패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아니라 미래가 열려 있는 사람인 셈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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