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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832] 왜 바둑에서 '초읽기'라고 부를까

2026-07-03 06:32:18

'바둑 황제' 조훈현(왼쪽)이 바둑 천재소녀와 대국를 하는 모습
'바둑 황제' 조훈현(왼쪽)이 바둑 천재소녀와 대국를 하는 모습
폭염이 한풀 꺾일 기미를 보이더니, 이번에는 장마가 초읽기에 들어간 모양이다. 제주도 한라산에 200밀리 넘는 폭우가 쏟아진 데 이어 수도권에서 짙은 비구름대가 엄습하며 장대비를 쏟아붇는다.

어떤 일이 시간적으로 매우 임박할 때, ‘초읽기’라는 말을 쓴다. 원래 이 말은 바둑에서 남은 시간을 초 단위로 세어 주는 행위를 뜻했다. 여기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일이 곧 벌어진다'는 의미가 파생되어 현재의 비유적 표현으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초읽기는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인 한자어 ‘초 초(秒)’와 숫자를 하나씩 소리 내어 세는 것을 의미하는 우리말 ‘읽기’의 합성어이다. 원래 바둑에서는 정해진 생각 시간이 끝나면 초읽기에 들어간다. 심판이나 계시원이 "하나, 둘, 셋…" 또는 "1초, 2초, 3초…"처럼 남은 시간을 초 단위로 읽어 주는데, 이 과정을 초읽기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초읽기라는 단어는 1960년대부터 등장한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64년 3월8일자 ’아슬아슬「삼호(三戶)」차이(差異)‘ 기사는 ’조선일보 창간사십사(四十四)주년기념 오(五)관왕 조남철(조남철(趙南哲))팔(八)단대 정예 김인(김인(金寅))사(四)단의『최강삼(三)번기』제이(二)국은 기계(기계(棋界))에 새로은화제를 불러일으킨가운데 7일상오10시부터 서울시 회현동 경동「호텔」에서 격전의 막을 올렸다. 산병전(산병전(散兵戰))과 전국전(전국전(全局戰))으로 시착된 대국은 조팔(八)단이 마련한 실리(실리(實利))와 김사(四)단이 구축한 외세(외세(外勢))로 대조적인 판도를 누벼나갔고,중판전에 이르러서는 거듭번복되는 전세로 아슬아슬한경지에 놓이게 되었다.종반전에이르러「초읽기」(초독(秒讀))에 쫓기면서도 김(김(金))사(四)단이선전분투,결국반면삼(三)호(호(戸))의차이로 연승하였다.(소요시간=김사(四)단4시간59분,조팔(八)단4시간52분)‘라고 전했다. 기사에서 주목할 것은 '초읽기' 옆에 한자로 '초독(秒讀)'을 병기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아직 초읽기라는 표현이 널리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한자어 秒讀(초독)을 함께 적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초독은 문자 그대로 '초(秒)를 읽는다'는 뜻이다. 이후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언론은 이 바둑 용어를 정치·경제 기사에도 비유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예전 바둑에서는 기본 제한시간을 모두 사용하면 곧바로 패배하는 대신 일정한 추가 시간이 주어졌다. 이를 초읽기라고 불렀는데, 초읽기에서는 기록원이 "하나, 둘, 셋…" 하고 매초를 소리 내어 읽어 준다. 예를 들어 "30초 초읽기 3회"라면 한 수를 둘 때마다 30초 안에 착수해야 하며, 30초를 넘기면 한 번의 초읽기를 소모한다. 이 과정에서 기록원은 실제로 1초마다 숫자를 읽어 나간다. 초읽기는 시간을 측정하는 사람이 초를 하나씩 읽어 주는 행위에서 비롯된 말이다. 시간을 세는 것이 아니라, 초를 소리로 불러 주는 방식이 이름이 된 셈이다.

오늘날에는 디지털 시계가 이 역할을 대신한다. 전자 계시기는 남은 시간을 화면에 표시하고, 마지막 몇 초에는 음성이나 경고음으로 시간을 알려 준다.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진 대국장도 많지만 초읽기라는 용어는 그대로 남았다. 기술은 바뀌었지만 언어는 그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 표현은 바둑을 넘어 우리말 속으로 널리 퍼졌다. 시험 종료 직전, 마감 직전, 경기 종료 직전처럼 시간이 거의 남지 않은 상황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제 초읽기다"라고 말한다. 원래는 바둑 용어였지만, 이제는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시간의 은유가 되었다.

언어는 종종 과거의 풍경을 기억한다. 자동차가 없어도 '마차의 고삐를 잡는다'는 표현이 남아 있듯, 기록원이 조용한 대국장에서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을 또박또박 읽어 주던 모습은 초읽기라는 단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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