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있는 것은 당초 ‘재계에서 국내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던 삼성이 1990년대에도 유독 한국시리즈 우승과 인연일 맺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990년 시작과 함께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LG에 타이틀을 내주어야 했고, 1993년 플레이오프에서는 3년 전 자신들을 괴롭혔던 그 LG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해태에 분패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특히, 1990년에는 플레이오프 승리 이후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1차전 0-13 패배의 후유증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8연패’, 비운의 감독 정동진
결국, 정동진 감독은 전임 박영길 감독의 뒤를 이어 1989시즌부터 삼성을 이끌기 시작했다. 출발도 괜찮았다. 약화된 전력을 추슬러 그 해에 바로 4위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정동진 호(號) 출범 2년째는 더욱 대단했다. 그 해 플레이오프에서 ‘넘을 수 없는 벽’일 것만 같았던 해태마저 3연승으로 제압하며 한국시리즈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남은 것은 MBC에서 LG로 유니폼을 바꿔 입기만 했던 ‘한국시리즈 첫 진출 팀’에 승리를 거두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힘 있는 야구, 깨끗한 야구’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LG의 기세는 생각 외로 거셌다. 1차전 13-0 패배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해도 2차전 2-1의 리드까지 지키지 못했던 것은 치명타였다. 2차전 패배는 결국 3차전까지 이어졌고, 4차전에서는 아예 제대로 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6-2 패배를 당해야 했다. 결국, 정동진 감독은 그 해 팀을 준우승에 이끌고도 사령탑에서 물러난 비운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이후 정 감독은 미국으로 야구 연수를 떠났다. 그러다가 1992시즌을 앞두고 태평양 돌핀스의 부름을 받고 다시 사령탑에 올랐는데, 이번에는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그 해 6위를 시작으로 이듬해에도 최하위를 기록하며 약한 전력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94년에는 단숨에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하며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정민태를 필두로 김홍집, 안병원, 최창호, 최상덕으로 이어지는 선발 마운드의 탄탄함과 마무리 정명원의 분전이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타선에서도 LG 이적 이후 최고의 모습을 보인 윤덕규와 4번 타자 김경기, 포수 김동기 등이 힘을 보탰고, 김성갑 역시 리드오프로 노련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에 플레이오프에서도 한화 이글스에 3승 무패로 완승하며 당당히 한국시리즈에 오를 수 있었다.
4년 만에 다시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른 정동진 감독은 또 다시 LG를 적수로 만나는 ‘묘한 악연’을 이어갔다. 그러나 1차전을 잡게 될 경우 얼마든지 시리즈를 가져갈 수 있었다. 긴 시간 동안 경기를 치르지 못하여 실전 감각이 부족했다는 점도 LG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정 감독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다. 물론 작전은 성공이었다. 정규시즌 내내 쉴 줄 모르던 LG 방망이가 9회까지 선발 김홍집의 구위에 눌려 이렇다 할 찬스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태평양은 0-1로 뒤진 7회 초 반격서 하득인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드는 등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8회 초 1사 만루서 김동기가 5-4-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로 역전 찬스를 날려버린 것이 뼈아팠다. 결국, 태평양은 11회까지 홀로 마운드를 지키던 김홍집이 지명 대타로 출전한 김선진에게 끝내기 역전 홈런을 허용하며 1-2 패배를 당해야 했다.
비록 정 감독은 프로 사령탑 시절, 한국시리즈 정상 정복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업적까지 가볍게 평가할 수는 없다. 그는 태평양 시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추후 ‘현대 유니콘스 왕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으며, 삼성 시절에도 약해진 팀 전력을 추슬러 상위권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한 바 있다. 공교롭게 두 팀은 정 감독 퇴임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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