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차범근의 소감 전문
스포츠영웅, 나는 작년에 이런 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실 작년에 이 상에 관심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투표하라고 문자도 보냈는데, 김연아 앞에서 어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내가 투표를 했다면 나도 김연아를 찍었을 것 같다. 그래도 박찬호, 박세리 같은 쟁쟁한 후배들 틈에서 관심을 받는 것은 즐거웠다. 한 편으로 아무래도 절대강자 김연아가 수상하고 나면 내년에는 나이 순으로 내게 상이 돌아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해봤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준비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가 시상 대상이 됐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우리 축구계 사정이 그다지 편치 않았기에 이런 즐거운 일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뽑아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만 18세에 국가대표가 됐고, 이제 예순을 많이 넘긴 나이가 됐다. 라디오로 축구 중계를 듣다가,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흑백 TV로 축구를 보던 시기에서 실제와 같은 컬러 TV를 거쳐 이제는 손바닥 만한 핸드폰으로 세계 축구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반 세기가 지나지 않았는데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아직까지 기억하고, 사랑해주신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흑백 TV 세대에게 따뜻한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나를 차범근으로 기억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를 차두리 아빠로 기억하는 사람은 빼고 말이다.
내일 국제축구연맹(FIFA) 초청으로 러시아 조추첨 행사에 간다. 우리가 경기를 더 잘 할 수 있는 상대와 한 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긴장되고, 떨린다. 9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하고도 칭찬을 받지 못한 후배들을 격려하고 싶다. 팬들도 축구를 사랑하기에 화를 내는 것이다.
나이가 있다보니 이제 거의 후배, 제자, 자식 같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축구판에서 꿈을 가지고 자기 일을 하고 있다. 축구는 이들의 꿈과 열정을 먹고 건강하게 발전한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그렇게 신명나게 일하고 있지 못하다. 더러는 풀 죽어 있고, 더러는 좌절하고 있다. 축구로 모든 것을 누린 나로서는 미안하고, 걱정되는 일이다. 그러던 차에 대한체육회로부터 스포츠영웅이라는 큰 상을 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소식을 듣는 순간 나에게 책임을 묻는 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신이 번쩍 났다. 지금 축구협회는 변화하려 애쓰고 있다. 팬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겠지만, 내가 보는 눈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많이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다. 서로 부딪히고,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요즘 여러가지 사회 현상을 보면서 역지사지라는 말이 나를 가르치고 있다. 상대 입장을 알려하는 마음이 시작이다. 내 식구라는 따뜻한 마음으로 모든 문제를 풀려고 노력한다면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에도 축구를 위해 일하는 많은 사람이 모였다. 내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상대 입장과 자리에서 한 번 쯤은 보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CBS노컷뉴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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