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명의 태권도용어사전에 따르면 '수박'이라는 용어는 중국 사서인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수박육편이라는 책에 처음 등장한다. 우리나라 기록에서는 수박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나는 것은 ‘고려사’ (1451)라고 한다.
수박은 수박기, 수박희 등의 명칭으로 불려 오다 지금은 수박도(手搏道)로 자리 잡았다. 수박은 1950년대 태권도가 본격 등장하기 이전 많이 선호했던 무도였다. 무도인인 황기(黃琦·1914∼2002) 무덕관 초대관장은 1956년 체육학자인 서울대 나현성(1916~1990) 교수와 함께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수박을 재현했고 1960년 대한수박도회를 만들었다.
한학자집안 출신인 황기 관장은 수박을 화수도(花手道) 또는 당수도(唐手道)란 이름으로 불렀다. ‘화수’는 신라시대 화랑도에서 따온 것으로 전통무예의 맥을 이으려고 명칭이다. 당수도는 중국색이 물씬 풍기는 이름이었다. (본 코너 40회 ‘‘당수(唐手)’에 ‘당나라 당(唐)’자가 들어간 까닭은‘ 참조)
해방 이후 우리나라 무도계는 황기의 무덕관을 비롯해 청도관 등의 수련관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수박도’가 재현되면서 일제시대에 맥이 끊어질 뻔한 전통무예가 살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무덕관은 존폐의 위기를 맞았다. 군사정권은 나중에 캐나다로 망명한 최홍희를 앞세워 무도계 통합을 시도했다. 모든 무도인들이 태권도협회에 가입하도록 협박·회유했으며 이에 응하지 않는 대한수박도회를 불법단체로 몰아 해산을 명하기도 했다.
오랜 법정 싸움 끝에 수박도의 명맥은 유지했지만 이미 수박도 수련관 중 상당수는 태권도협회로 흡수된 뒤였다. 결국 황기를 비롯한 다수의 무도인들이 미국을 비롯해 외국으로 떠나면서 국내 수박도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수박도의 기본동작은 13세(품세)와 3공법에 기초한다. 3공법은 손기술, 발기술, 대련을 중심으로 하는 외공과 호흡을 통해 익히는 내공, 정신수련을 목적으로 하는 심공으로 나뉜다.
태권도의 원류인 수박은 태권도의 동작과 정신에 스며들어 세계 태권도인들에게 우리 민족전통문화의 근원을 알리고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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