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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500] 한국에서 럭비는 왜 ‘비인기종목’이라 말할까

2025-07-29 05:50:21

국내 럭비 대회에는 관중이 많지 않다. 선수와 관련한 사람들이 찾아와 보는 정도에 그친다. TV 중계나나 신문 등 언론의 보도도 별로 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의 관심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럭비인들은 대회가 열릴 때마다 ‘그들만의 잔치’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국내에서 비인기종목으로 분류되는 럭비 경기 모습
국내에서 비인기종목으로 분류되는 럭비 경기 모습
럭비는 국내에선 이른바 ‘비인기종목’으로 불린다. 영국, 뉴질랜드, 남아공 등 영연방 국가들이나 일본에선 럭비의 인기가 높지만 우리나라에선 별로 인기가 없다.

‘인기종목’과 ‘비인기종목’이라는 표현은 단지 사람들이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넘어서, 사회·경제·문화·교육·미디어 구조 안에서 형성된 결과물이다. 인기종목은 대중이 많이 관람하고, 응원하고, 직접 참여하는 종목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등을 인기종목이라 한다. 비인기종목은 경기 일정이나 결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적고, 선수나 룰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면 럭비, 핸드볼, 소프트볼, 근대5종, 정식 씨름 등이다.
인기종목과 비인기종목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들어온 일본식 한자어이다. 인기종목은 한자로 ‘ 人氣種目’이라고 쓴다. 비인기종목은 ‘인기종목’이 아니라는 뜻으로 인기종목이라는 단어 앞에 ‘아닐 비(非)’가 붙는다. 두 단어는 근대 스포츠의 도입 및 대중화 과정 속에서 생겨난 언론적인 표현이다.

인기(人気)’는 중국 고전 한자어로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선호나 대중적 호응이라는 현재의 뜻은 일본어에서 형성된 용법이다. 일본어에서 ‘にんき(人気)’는 19세기 메이지 시대부터 ‘사람들의 주목과 호감을 받는 상태’로 널리 쓰였다고 한다. 이는 일본 근대 사회에서 신문·잡지 등 대중매체의 발전과 함께 연예, 스포츠, 문화 분야에서 사용되면서 일반화된 것이다.

종목(種目)은 종류를 의미하는 ‘씨 종(種)’과 ‘눈 목(目)’자의 합성어이다. 여러 항목 중 하나의 종류라는 뜻이다. 체육이나 시험 과목, 경기 항목 등에 두루 쓰이는 용어이다. 근대 스포츠 도입 이후, 각 경기를 나누는 데 사용되었고, 올림픽·체육대회 등에서 정식 용어로 굳어졌다. (본 코너 779경기(競技)와 종목(種目)은 어떻게 다를까참조)

인기종목이라는 말은 20세기 초중반 일본에서는 대중문화의 확산과 함께, 스포츠·연예·문학 등에서 많이 사용했다. 이때 신문, 잡지, 방송 등에서 ‘인기종목(人気種目)‘, ’인기배우(人気俳優)‘, ’인기경기(人気競技)‘ 같은 표현이 일반화됐다.

해방 이후 한국도 일본어식 표현을 많이 차용하면서, 인기 종목이란 말이 언론, 체육계, 교육계, 방송계 등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7년 4월28일자 ‘명일(明日)안동운동대회(安東運動大會) 전안동(全安東)의인기비등(人氣沸騰)’ 기사는 ‘기보안동(旣報安東)의춘계운동대회(春季運動大會)는 이십구일오전구시(二十九日午前九時)부터 안동읍내연병장(安東邑內練兵場)에서 개최(開催)케되엇는바 군내공사립남여학교청년회기타각단체(郡內公私立男女學校靑年會其他各團體)에서는 맹렬(猛烈)히 연습중(練習中)이오 전안동십륙만명(全安東十六萬名)의 인기(人氣)가 비등(沸騰)하야 대장관(大壯觀)을예상(豫想)한다는데 삼개(三個)의영광(榮光)잇는우승기(優勝旗)는 누구의소유(所有)가 될가당일순서(當日順序)에 나타날 경기종목(競技種目)은 여좌(如左)하다더라(안동(安東)) ◇경기종목(競技種目) (일(一))오종경기(五種競技)=백미(百米) 이백미장애물(二百米障碍物) 대낭(戴囊) 슷푼 필산(筆算)(이(二))투기(投技)=원반(圓盤) 창(槍) 포환(砲丸)(이(二))도기(跳技)=고도(高跳) 광도(廣跳) (사(四))장거리(長距離)(오(五))천미(千米) (육(六))자전거(自轉車)=이십주(二十週) 오십주(五十週) (오(五))리레=대교단체(對校團體)’라고 전했다.
‘비인기종목’이라는 표현은 일본어의 ‘不人気種目(ふにんきしゅもく)’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인기종목이라는 말 앞에 ‘아닐 불(不)’ 대신 ‘아닐 비(非)’를 쓴 것만 다르다. 비인기종목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1960~70년대 신문과 방송에서 처음 등장했다. ‘○○ 종목은 비인기종목이라 중계도 없고, 관중도 없어 선수들이 의욕을 잃고 있다”는 식의 문장으로 표현했다. 특히 전국체전,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을 앞두고 인기·비인기 종목 구분이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면서 널리 퍼졌다.

인기종목, 비인기종목을 나누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현상이다. 인기와 비인기 종목은 시대와 지역, 종족, 문화에 따라 다르다. 스포츠는 인기나 명성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함께 뭉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실 모든 스포츠가 인기 종목이 돼야 맞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스포츠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론 등은 편의상 인기종목, 비인기종목으로 나누는게 관행으로 굳어졌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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