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uch the net’ 어원은 배구 규칙이 형성·표준화되는 과정에서 영어 동사구가 그대로 규칙 용어로 굳어진 사례다. 원래 명사형 용어가 아니라, 초기 배구 규칙서에 등장한 서술형 문장이었다.즉 처음에는 ‘터치 더 네트’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네트를 만지는 행위”를 설명하는 동사구였던 셈이다. 배구는 1895년 미국에서 창안된 이후, 초기에는 네트 접촉에 대한 규정이 지금보다 훨씬 느슨했다. 공이 네트를 맞는 것은 허용하고 선수의 의도적·명백한 네트 접촉만 금지했다. 배구가 국제 경기로 정착하면서(1920~30년대) 심판 판정의 통일성, 반칙 상황의 즉각적 전달이 필요해졌고,,그 결과 규칙 문장 속 동사구가 그대로 반칙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한국어 네트 터치는 일본식 스포츠 영어 관행을 거쳐 굳어진 표현이다. 일본에서는 ‘넷토 탓치(ネットタッチ)’라는 식으로 영어를 그대로 음차해 썼고,,해방 이전·이후 한국 체육계는 이 용어를 거의 수정 없이 받아들였다.
단어 하나의 차이지만, 그 안에는 북한 스포츠 언어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북한 체육 용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외래어를 가능한 한 배제하고 뜻이 분명한 조선어로 대체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명명 방식은 북한 체육 언어 전반에서 반복된다. 농구에서 ‘어시스트’를 ‘득점련락’, ‘리바운드’를 ‘판공잡기’, ‘파울’을 ‘개별선수반칙’이라 말한다. 공통점은 모두 동작과 결과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스포츠 용어를 기술적 전문어라기보다 규칙을 전달하는 규범 언어로 다루는 태도다. 관중이든 선수든, 용어를 듣는 순간 무엇이 잘못됐는지 바로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발상이다. (본 코너 1652회 ‘북한 농구에선 왜 ‘어시스트를 ’득점련락‘이라 말할까’, 1653회 ‘북한 농구에선 왜 '리바운드'를 '판공잡기'라고 말할까’, 1659회 ‘북한 농구에선 왜 ‘파울’을 ‘개별선수반칙’이라 말할까‘,
그물접촉이라는 표현에는 일본식·영어식 스포츠 언어와의 거리두기라는 역사적 맥락도 배어 있다. 남한에서 익숙한 ‘네트 터치’라는 말은 영어에서 왔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식 스포츠 용어 체계를 통해 굳어진 측면도 있다. 북한은 해방 이후 체육 용어를 정비하면서 이런 외래 혼합어를 식민 잔재로 인식했고, 새로운 규범어를 만들어내는 길을 택했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규칙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배구에서 네트 터치는 개인의 순간적 실수일 수 있지만, 북한식 표현은 이를 ‘접촉’이라는 위반 행위로 명확히 규정한다. 기술의 실패라기보다 경기 질서를 흐린 행위라는 인식이 앞선다. 이는 개인의 재능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스포츠 담론보다는, 집단 경기에서의 규율과 통제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스포츠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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