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말하는 '망한 1억 달러'의 전형은 기량 저하가 뚜렷하거나, 불성실한 훈련 태도로 팀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를 뜻한다. 그러나 이정후의 사례는 이와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그는 여전히 리그 최상위권의 컨택 능력을 유지하며 헛스윙률을 최소화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생경한 구속과 움직임 속에서도 어떻게든 공을 맞혀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내는 천부적인 감각은 여전하다.
세이버메트릭스 관점에서 봐도 이정후에 대한 비판은 가혹한 면이 있다. 기대 타율(xBA) 등 세부 지표는 실제 성적보다 훨씬 긍정적인 수치를 가리키고 있다. 이는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하거나 상대의 호수비에 막히는 등 '운'의 요소가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즉, 이정후의 타격 메커니즘 자체가 붕괴된 것이 아니라 빅리그의 수비 범위와 경기 흐름에 동화되는 과정에 있다는 방증이다.
1억 1,300만 달러라는 금액은 선수가 요구해서 억지로 받아낸 것이 아니라, 시장 가치를 면밀히 분석한 구단이 직접 결정한 투자다. 선수는 자신을 가장 높게 평가해 준 팀에서 최선을 다해 뛸 의무가 있을 뿐, 계약금의 크기 자체를 결정할 권한은 없다. 만약 이 금액이 시장가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구단의 안목이나 협상 전략을 비판할 일이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선수에게 돌을 던질 명분이 될 수 없다. 비판은 짧고 기록은 길지만, 선수를 믿고 기다려주는 팬들의 지지는 그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기기 마련이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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