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트랙에서 5,000m와 10,000m를 장거리 종목이라고 말한다. 장거리 종목이라는 말은 줄여서 장거리라고도 얘기한다. 장거리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긴 장(長)’과 길이를 의미하는 ‘거리(距離)’로 구성된 단어이다. 멀리 뛴다는 뜻이다.
장거리 종목은 영어 원어로는 ‘long distance events’라고 표기한다. 일본어 대사전에 따르면 장거리라는 말은 1908년 일본의 국민 작가로 칭송되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소설 ‘산시로(三四郎)’에 처음 등장했다. 1923년 발행된 육상경기법에는 장거리는 장거리 경주의 약자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선 장거리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장거리라는 말이 검색되지 않으며, 일제강점기 때 언론에서 장거리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일보 1923년 4월26일자 ‘남선육상대운동회(南鮮陸上大運動會)’ 기사에서 ‘일본인김천청년회주최(日本人金泉靑年會主催)로 거이십이일(去二十二日)에 김천심상소학교운동장(金泉尋常小學校運動塲)에셔 남선육상대운동회(南鮮陸上大運動會)를 관최(關催)하얏는대 운동장(運動場)은 전부 조선청년(全部朝鮮靑年)이 점령(占領)하얏슬뿐아니라 경기(競技)의 우승자(優勝者)는 거개 금릉청년회원(擧皆金陵靑年會員)이엿는대 차(此)를 일(一)々히매거(枚擧)키 난(難)하나 오리장거리경주(五里長距里競走)는 금릉청년회원 문인수군(金陵靑年會員文仁洙君)이삼십이분(三十二分)에 우승기(優勝旗)을 점(占)하얏스며 또 이등(二等)은 동회원 문수곤군(同會員文洙坤君)이 점령(占領)하얏다더라’고 전했다. 김천 청년회 주최 운동회에서 오리 장거리경주 부문에서 금릉청년회원 문인수 군이 우승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만해도 5리, 지금 기준으로 약 2,000m 경기를 장거리로 표기한 것이 눈길을 끈다.
원래 5,000m와 10,000 장거리 경기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행했던 경기였다고 한다. 19세기 중반에는 영국과 미국에서 도박을 목적으로 한 장거리 경기가 열려 매우 인기가 있었다.
5,000m 경기는 400m 트랙을 12.5바퀴를 돌며, 10,000m 경기는 트랙 25바퀴를 돈다. 장거리 종목으로 완주에 30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선수들은 뛰어난 지구력이 필요하다. 단거리는 근육에서 속근을 쓰는데 반해 장거리는 지근을 많이 쓴다. 특히 체력을 비축했다가 막판에 치고 나가는 스퍼트 경쟁이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육상 장거리 종목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는 에밀 자토펙(1992-2000)을 꼽는다. ‘인간 기관차’라는 별명을 가진 체코 출신인 그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 1만m, 마라톤 등 장거리 종목을 모두 휩쓰며 3관왕을 달성했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영원불멸의 대기록이다. 자토펙은 17년을 현역으로 뛰는 동안 총 18번이나 각종 세계기록을 달성했다. 늘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진채 뛰는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달리는 재주는 타고 났는데, 달리면서 웃는 재주는 못 타고 났다"며 고통의 연속인 장거리 경기를 농담으로 응수했다고 한다.
그는 1968년 소련의 공산독재에 항거해 체코 민주화를 표방했던 이른바 '프라하의 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회 참여형 운동 선수로도 존경을 받았다. 자토펙은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며 달리기를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으로 해석하는 명언을 남겼다.
현재 장거리 종목은 케냐,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선수들이 독무대를 이룬다. 더위와 고산지대에서 단련돼 장거리 종목에 전문화, 특성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장거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는 마라톤으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다.
5,000m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남자경기가 먼저 채택됐으며, 여자경기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1983년 IAAF 세계선수권대회가 창설된 이후 남자 5,000m 경기가 포함됐으며, 여자 5,000m는 1995년 3,000m를 대체했다.
10,000m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5,000m와 함께 처음 남자경기가 채택됐으며, 여자경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