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1820년경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의 봄베이 지방에서 성행하였던 ‘푸나(Poona)’라는 놀이를 당시 인도에서 주둔하고 있던 영국 육군사관들이 배워 본국으로 돌아와 경기화 시키게 된 것이 정설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에는 그 지역의 바람이 많고 습한 날씨 때문에 상류계층들은 양모로 만들어진 공을 선호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셔틀콕이 가장 많이 사용되게 됐다.
세계적인 경기대회로는 1939년 국제 배드민턴연맹의 초대회장 조지 토머스경이 기증한 토머스컵(THOMAS CUP)대회와 H.S 우버여사가 기증한 우버컵(UBER CUP)대회, 세계배드민턴선수권(WORLD CUP), 전영오픈 배드민턴선수권대회 등이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시범종목을 거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그 외에도 세계의 각국에서 많은 오픈(OPEN)대회를 개최하여 수많은 경기가 연중 열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1990년부터 코리아오픈(KOREA OPEN)대회를 개최하여 세계 톱랭커들의 수준높은 경기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배드민턴 경기가 보급된 것은 해방후의 일이다. 그러나 당시의 배드민턴은 놀이의 성격을 띤 것으로서 1957년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조직되면서 경기적 배드민턴이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1962년에 배드민턴협회가 대한 체육회 가맹단체가 되었으며 그해 제43회 전국체육대회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우리나라 언론에도 배드민턴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따르면 경향신문 1961년 10월20일자 ‘체육대사전(體育大辭典) 수발매(遂發賣)’기사에 처음 배드민턴이라는 말이 소개됐다.
한국 배드민턴은 1981년 황선애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고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전영오픈 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개인단식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세계 각국에 널리 알리게 되었다. (본 코너 1050회 ‘왜 전영오픈을 ‘배드민턴의 윔블던’이라 말할까‘ 참조)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박주봉, 김문수조는 남자복식, 황혜영, 정소영조는 여자복식 경기에서 금메달, 심은정, 길영아조는 동메달, 여자단식의 방수현이 은메달을 획득하여 명실상부한 배드민턴의 세계강국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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