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234] 유도에서 왜 ‘일본어’를 사용할까

김학수 기자| 승인 2024-10-13 06:50
2023년 도하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11명의 역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모여 있는 모습. [국제유도연맹 홈페이지 캡처]
2023년 도하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11명의 역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모여 있는 모습. [국제유도연맹 홈페이지 캡처]
주요 세계스포츠 종목은 발상지 언어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태권도가 한국어, 펜싱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이유이다. 일본의 전통 무예인 ‘유술(柔術)’을 기초로 만들어 세계적인 스포츠 종목으로 성장한 유도도 경기와 기술 단어들이 일본어로 돼 있다. (본 코너 564회 '왜 태권도 용어는 한국어를 사용할까', 1151회 '펜싱 경기 용어는 왜 프랑스어를 사용할까' 참조)

유도는 어느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거듭하며 발전시켜 온 전통 무예를 바탕으로 한 운동이다. 유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가노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9)이다. 가노가 메이지 시대인 1882년 ‘강도관(講道館)’을 세우고 청소년들에게 유도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유도의 기원이다. 가노의 유도는 심신을 단련하는 데 목적을 둠으로써, 승패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유술과 차별성을 두었다. 동경제대 철학과를 졸업한 가노는 아시아인 최초로 IOC 위원을 역임했으며, 일본체육 협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지냈다. 일본에서 그는 ‘유도의 아버지’, ‘일본 체육의 아버지’로 불린다. (본 코너 1231회 ‘왜 ‘유도(柔道)’라고 말할까‘, 1232회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郎)는 왜 ‘일본 유도의 아버지’로 불리나‘, 1233회 ’일본 유도의 총본산을 왜 ‘강도관(講道館)’이라 말할까‘ 참조)
국제유도를 관할하는 국제유도연맹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이다. 하지만 국제경기에서 쓰는 유도 용어는 대부분 일본어로 돼 있다. 따라서 일본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유도 규칙이나 용어 개념 등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유도가 첫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64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 [국제유도연맹 홈페이지 캡처]
유도가 첫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64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 [국제유도연맹 홈페이지 캡처]


일본에서 가노가 창시한 유도는 경찰이나 학교 등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스포츠 경기로 발전했다. 1948년 제1회 전일본유도선수권 대회가 열렸고, 그 다음해 전일본유도연맹(AJJF)이 만들어졌다. 해외 보급도 시작돼, 1951년 국제유도연맹(IJF)이 창립됐고, 1956년 제1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일본 도쿄에서 개최됐다. 올림픽 경기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남자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으며. 여자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됐다.

유도를 의미하는 영어 명칭 ‘Judo’는 일본식 한자어 ‘유도(柔道)’를 발음 그대로 옮긴 것이다. 우리나라 유도는 일본어 용어를 국내 대회서는 한국어로 번역해 사용한다. ‘잇폰(一本, Ippon)’을 ‘한판’으로, ‘와자아리(技あり, Waza-ari)를 절반이라고 각각 말한다. 하지만 국제 대회에서는 종주국인 일본의 용어를 발음 그대로 쓴다. '시작'은 '하지메(始め)', '그쳐'는 '마테(待て)', '그대로'는 '소노마마(そのまま)', '계속'은 '요시(よし)', '거기까지'는 '소레마데(それまで)'로 호칭한다. 한국 국내 대회에서는 주심이 한국어로 선언하지만 국제 대회에 참가할 국가대표 선발전에 한해서 국제 대회 발음대로 일본어로 한다. 한때 대한유도회에서 국내 대회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이제황의 저서 '신유도'에 의하면 1909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유도가 처음 선보였다고 한다. 1928년 황성기독교청년회 유도부에서 유도 용어의 일부를 한국어로 바꿔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후 일제 치하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유도 도장이 세워졌다. 특히 중고등학교가 중심이 돼 유도를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였고 이후 널리 전파하는데 일조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유도 경기 기사를 보도했다. 조선일보 1924년 4월28일자 ‘시종(始終)이 장쾌(壯快)한 유도대회(柔道大會)’ 기사는 ‘죠션강무관(조선강무관(朝鮮講武舘))쥬최로 유도대회(유도대회(柔道大會))를 개최한다함은 이미 보도한바어니와 재작일 오후 여달시부터 예뎡대로 시내 경운동(경운동(慶雲洞))텬도교당에서 개최하얏는데 뎡각전부터 대만원을 이루엇스며 류량한 음악으로 개회한 후 뎨일차로 강무관 일동이 나셔셔 락법(낙법(落法))을 시험하야 일반관객으로하야곰 놀날만한 기술을 보이고 그다음에는 유도시합(시합(試合))에 착수하얏는데 그 성젹을 렬거하면 아래와갓더라
오급(五級) 배재조응구(培材趙應九)〇강무기용옥이(講武奇龍玉二)
동(同) 청년이수연(青年李壽連)〇강무정재흥(講武鄭在興)〇사급(四級) 배재이철우(培材李喆雨)〇강무변완변(講武卞完變)〇 청년이중근(靑年李仲根)〇강무김경한(講武金景漢)〇 청연김용화(靑年金鏞化)〇양무흑수(養武黑須) 이(二)
삼급(三級) 배재전진수(培材全鎭守)〇강무이만석일(講武李萬錫一)□□ □□□□□ 〇강무김창엽(講武金昌燁)〇□□□□□□삼식이양무등권(三湜二養武藤卷) 일(一)□□□□□□등(藤) 일강무로용우일(一講武盧容禹一)□□□□□하본(河本) 〇강무금필기이(講武金弼基二)□□□□무지전(武池田) 〇동(同) 김동석이(金東錫二)□□□에는란포(난포(亂捕))관절법(관절법(關節法))유도와 권두(권투(拳鬪)) 졍쟁 등으로 밤십이시에 폐회 하얏는데 아즉 유도가 보급되지못한 죠션에서는 실로 놀나울만하게 되얏스며 현장에셔 강무관 건축에 보태여쓰라고동졍금이 수만원에달하얏다더라’라고 전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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