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의 정식 명칭은 원래 ‘일본전(日本傳) 강도관 유도’였다. ‘일본전(日本傳)’이라는 말은 일본이 만들었다는 의미인데, 줄여서 ‘강도관 유도’라고 했다가 더욱 간략화해 ‘유도’라고 불렀다. 한때 국제 유도연맹의 규약 제1조에 ‘고로 지고로 사범에 의해 창설된 것을 유도라고 인정한다’라고 쓰여져 있다.
강도관에서 ‘도’를 강조하는 것은 유도가 상대를 쓰러뜨리는 단순한 기술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유도는 심신의 힘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길이다. 그렇게 해서 부디 자신을 완성하고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게 유도 수행의 궁극적 목적이다’는 가노 사범의 가르침이 담겨있다고 한다. 유도 수행을 통해 인격형성을 도모하고 세상을 위해 길이 되라는 것이다.
가노는 강도관 설립 후 1889년 ‘유도는 좋은 것이니까 세계에 퍼뜨리자’라는 생각으로 유럽 국가에 유도 보급 활동에 나섰다. 가노가 1909년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쿠베르댕 남작에 의해 IOC 위원이 된 것은 ‘스포츠를 통해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고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 실현에 공헌하는 것’이라는 올림픽 정신과 유도 정신과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노는 평생 ‘스포츠는 교육’이라는 철학을 갖고 활동하며 일본체육협회를 만들고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일본 선수단장을 맡기도 했다. 가노는 1938년 77세로 타계할 때까지 강도관 관장을 맡았다. 5대 강도관 관장은 가노가문이 아닌 사람으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우에마루 하루키가 맡은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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